영화 후기와 이야기들

긴급 신고 센터에 근무 중인 경찰 ‘아스게르’는 심상치 않은 신고전화를 받습니다. 한 여성이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사건에 뛰어듭니다. 두 대의 전화기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더 길티] 입니다.

이 글은 [더 길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CGV에서 [개봉 미정]이라는 이름으로 열과 성을 대한 홍보를 해서, 강제로 개봉을 시킨 영화입니다. 이런 마케팅에는 배급시장의 현실을 말해주는 하나의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이런 마케팅을 하지 않았다면, 상영관 확보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더 길티]와 같은 날에 개봉하는 영화를 살펴보면, [어스] / [덤보] / [장난스런 키스] / [썬키스 패밀리] / [콜레트] / [아틱] / [강변호텔] / [선희와 슬기] 그리고 아직 건재한 [캡틴 마블]이 있고, 지난 주에 개봉한 [돈]도 아직 예매율 상위권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스타도 한 명도 없는 이 영화가 개봉했을 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마케팅까지 하면서 개봉시켜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더 길티]는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우선, 한정된 공간이라는 소재를 잘 활용하고 있고, 그 공간 안에서 전화로만 이야기 전개를 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정된 소재를 사용하는 영화는 자연스럽게 스토리의 힘이 중요하게 됩니다. 몇 달전에 개봉한 [완벽한 타인]도 한정된 공간 안에서 여러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덕분에 영화에 대한 평과 관객 반응에서 모두 좋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영화 [더 길티]는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나름의 변화를 주면서 인물과 상황에 대한 간접적인 표현이 드러나는 영화입니다. 이런 연출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고, 스토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거기에 이야기 자체도 단순히 흥미만을 위한 스토리가 아니라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몇몇 지점들이 존재합니다. 그 지점들이 이 영화가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진행해야 하는 이유가 나타납니다.

시청각 매체인 영화에서 비슷한 시각적 효과, 즉 같은 장소가 반복되어 보이는 것은 손해를 보는 일입니다. 저는 장점과 단점 중에서 장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장점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단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장점이 단점을 감수할 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장점이라면, 그 단점은 감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영화는 그 단점이 너무 커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영화도 그 장점을 때문에 포기하는 것들로 인해 생긴 단점이 존재합니다. 비슷한 화면들의 등장으로 영화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 사람의 얼굴과 한 장소를 영화 러닝타임 내내 봐야 하는 것은 스트레스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단점을 감수하면서까지 장소와 인물을 한정 지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의 주제와 연관되어 있는 일입니다. 같은 장소라도 그 안에서 인물의 이동하면서 화면의 프레임이 바뀌고, 다른 전화기로의 통화를 하거나 블라인드 및 조명을 통한 분위기 전환 등을 통해 인물이 느끼는 감정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한정된 무언가는 관객이 사소한 것에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한정된 환경은 비슷한 소재의 반복으로 이어지고, 그 반복이 지속되면서 소재에 익숙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작은 변화에 민감해지고, 디테일한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런 디테일들이 더 크게 보이게 되면서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에 다다르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사건 속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두 이야기를 아우르는 결말은 관객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변화 자체가 적기 때문에 작은 변화에도 관객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변화는 영화의 의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충격적이거나 허무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보면서 드라마 [리갈하이]가 생각이 났습니다. 이 드라마가 하는 이야기 중에는, 사람마다 각자의 정의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정의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사건에도 여러 가지의 정의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정의도 100개가 있다는 것이죠. 각자의 이해관계를 따져보면, 이 사람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 자신의 정의에서 어긋났다면서, 그들을 나쁜 사람으로 치부합니다. 섣부른 판단은 그 사람을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선의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죠.

그는 동료들이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혼자 방으로 들아가면서 단독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신고 센터 안내원으로 하면 안 되는 일을 합니다. 용의자에게 직접 연락하고, 가족에게 연락을 합니다. 동료 경찰관에서 자신이 상사인 것처럼 명령하듯이 이야기합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모두 주인공인 ‘아스게르’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퇴근까지 반납하면서, 이벤을 구하려고 했고, 같은 경찰서 내에 다른 동료들은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경찰서 동료들로 인해 마무리가 됩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주인공이 혼자서 할 수 있던 것은 없었습니다. 그 또한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주인공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아마 그가 하는 행동이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이 직접 나가서 해결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은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킵니다.

경찰서 내에 다른 경찰들도 ‘아스게르’ 만큼 범인을 잡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범인을 잡는 것이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닐뿐더러, 혼자서는 더더욱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절차라는 범위 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각자의 역할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 역할은 아무런 이유 없이 나눠진 것은 아닐 것이니까요.

영화 속 사건의 주인공인 미카엘과 이벤 또한 그들의 사연이 존재했습니다. 미카엘은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용의자로 용의선상에 올랐습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전과자라는 이유로 그 누구도 그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있는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아들인 마틸데는 그 말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스게르가 그 말을 무시했고, 그는 마틸데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미카엘은 그의 아들을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 아스게르는 스스로 들어간 방 안에서 스스로의 분노를 참지 못합니다. 혼자 일을 벌이고, 혼자 화를 내는 것이죠. 그럼에도 아스게르는 자신의 저지른 일에 대해 쉽게 사과하거나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끝끝내 다다라서 자살을 하려고 하는 이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제서야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 요청 덕분에 이벤은 무사히 구출이 됩니다.

결국 ‘아스게르’도 정의롭지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앞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단순히 오해가 있었거나, 일을 하는 중에 생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밝혀진 그는 그리 좋은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한 사건에 몰두하는 동안 걸려온 모든 전화들에 대해 그는 성의 없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만 움직였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지는 궁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보이는 것들, 아니 보이지 않고 들리는 것에만 의존해서 혼자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가둬놓은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표현되어 있는 한정된 공간은 사방이 모두 막혀있는 공간으로 표현됩니다. 심지어, 다른 방으로 이동한 뒤에도 블라인드를 내려서 스스로를 더 가뒀습니다. 때문에 그는 진짜 봐야 할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정의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서, 무엇 하나에 의존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4 / 5  눈 가리고 아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