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daDdaSsij 2018. 12. 30. 23:37

1년이 지났다. 

2018년, 나에게는 많은 일이 있던 해는 아니다. 나름 선택과 집중을 통해 많은 일보다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한 한 해였다. 그중에서도 영화를 보고 글을 쓴다는 목표 하나만은 이룬 것 같다. 그것이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나 스스로 세웠던 목표 하나를 제대로 했다는 것에 만족한다. 처음에는 그 목표가 아주 버겁게 느껴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수월해지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한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진심을 다해 적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그것을 어렵다고 말한다. 조금 더 정확히 하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성격상 내가 생각하는 것은 당당하게 말하는 편이라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더 수월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당당하게 말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 그 생각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 확신이라는 것은 근거 없는 확신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정답이 없기 때문에 내 생각이 그렇다고 누군가가 나에게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 생각이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고, 사회적 가치를 침해하는 일이라면 그 부분은 지적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면, 타인의 생각에 대해 지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나의 발언권만큼이나 상대의 발언권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면, 상대방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무언가를 비판한다면, 누군가도 나를 비판할 수 있다. 그런 점에 대해서는 이해한다. 아니, 인정한다. 내가 용납하지 못하는 점은 다른 것을 틀리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런 막무가내형 사람이 싫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괜히 쭈뼛서면서, 얼굴이 붉어진다. 이런 경험은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누군가와 대면하면서는 들어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기에 그런 이야기들이 더욱 강렬하게 박힌다. 아니,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몇 달 전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떤 질문을 받았다. 어떤 내용의 질문이고, 대답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내가 그 질문이 날카롭게 반응했다는 것이다. 그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스스로 철벽을 치고 있다’ 나도 모르는 방어기제를 보인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방어기제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괜히 나도 모르게 날카롭게 반응한 것은 스스로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특히나 글을 쓰면서 다른 영화나 어떤 인물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이 스스로는 그런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전부터 심리학에 대해 관심이 많아 관련된 책도 읽으면서 나름 사람 심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지 못했다. 타인의 심리만 생각하고 나 스스로에 대한 심리나 생각을 돌아보지 못했다. 올해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한다면 난 이 일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전에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아들러 철학을 누구나 알기 쉽게 풀어써서 쉽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모든 기억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기억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로 기억될 수도 있지만, 그 일을 좋게 기억하면 그것이 좋은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모든 기억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의해 변형되고, 그 기억들이 쌓여서 한 사람의 성격과 기질이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그 책을 읽고, 내가 가지고 있던 상처들이 정말 별 것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를 받는다는 표현을 한다. 나 스스로 별 일 아닌 일을 상처로 인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생각을 전하는 일이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을 전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글을 쓰는 기술적인 것은 보조해줄 수 있는 수단이 많다. 맞춤법 검사는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고, 기술적인 것은 유튜브나 블로그를 찾으면 금방 나올 수 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생각을 전달하는 것인데, 그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어렵다.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연초만 해도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가 있다. 그렇지 않은 영화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전에는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에 대해서만 글을 썼다. 그리고 올해가 시작하면서, 모든 영화에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쓸 이야기가 없는 영화에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한 줄 쓰기도 어려웠다. 머릿속에 생각이 떠다니고 있지만 그 조각들을 정리하며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어려웠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수월해졌다. 그렇다고 절대로 쉬워진 것은 아니다. 무언가가 수월해지고 난 후에는 다른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재미가 생겼다.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고등학교 때, 학교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사람은 무언가를 계속하게 되면, 그것으로 인해 생각이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지게 된다’라는 것이다. 연초와 지금을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느껴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대한 변화도 생겼고, 과거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에 대해 스스로 틀렸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괜찮은 한 해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연말이 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벌써 2018년이 끝나간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어떤 일도 쓸모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그 일이 쓸모없는 일 같아도, 머지않은 미래에 그 일이 나를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순간이 많다. 별생각 없이 볼 영화가 없어서 아무거나 봐야지 하며 보러 들어갔던 영화가 인생 영화가 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엄청 기대를 한 영화지만 너무 재미가 없는 영화도 있다. 인생은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람은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어떤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게 된다. 그 일을 하다 보면 내가 몰랐던 일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내가 시작할 때 가지고 있던 관심과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 경우도 많다. 개인적으로도 문화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방송이 시작이었다. 학창 시절 [무한도전] 재밌게 보던 학생이었다. 당시, [무한도전]을 보면서 PD를 꿈꿨다. 지금은 영화와 테크에 관심 있는 사람이 되었다. 테크에 관심을 가진 것도, 방송에 대해 배우면서 기계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서 였고, 영화에 대한 관심도 영상 기초를 배우면서 단편영화 제작을 해보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영화 사조에 대해 배우던 때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별로 안 좋아했다.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없다. 배우면서도 ‘이것이 무엇이 중요할까?’ 하는 생각으로 공부했다. 지금 와서는 그때 배운 것들이 아주 큰 자산이 된다. 영화에 대해서 글을 쓸 때도 많은 부분에서 참고하게 되는 부분이고, 영화를 해석하는 것에도 이러한 점들이 이해가 된다. 지금 와서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영화 역사 공부를 권한다. 특히, 영화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려고 하는 후배들이나 동생들이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영화 역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의 영화들은 대부분 영화 사조에 의해 나누어진 경우가 많다. 유럽 영화에서 예술영화가 발달하게 된 계기나 미국 영화가 팝콘무비의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 이유를 알고 이야기를 하는 것과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를 잘하려면 내가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 모른다면, 더 많은 자료 조사가 필요하다. 아는 것이 많아야 보이는 것이 많고, 보이는 것이 많아야 이야기할 것이 많아진다. 이러한 점 때문에 무엇이든 많이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이런 이야기나 지식 혹은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창구가 책 밖에 없었다. 때문에, 책을 많이 읽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책이 아니어도 된다. 지금은 지식이나 간접경험을 얻을 수 있는 창구가 많다. 인터넷 신문, 방송, 영화, 웹툰, SNS 등 이 외에도 많은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이든 읽어보고,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하다못해, 인터넷 기사라고 정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타인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읽어보기도 한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많은 것을 경험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남는 시간 동안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인터넷 기사를 본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새로운 것을 접한다고 생각한다면 같은 시간 동안, 같은 행동들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의미 없는 시간은 없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를 맞이하면서, 올해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 일들을 돌아보면서 생각나는 일들을 적어보았다. 별 일 없는 한 해를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많은 일을 했던 1년이었다. 내년에는 내가 어떤 위치에 있을지는 모르겠다. 2019년에는 새로운 도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1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19년에도 영화 리뷰는 계속됩니다. 


그리고 아직 이벤트가 진행중입니다. 간단한 설문과 함께 제가 선정할 2018 최고의 영화 3편을 맞춰주신 분들에게 영화 관람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https://form.office.naver.com/form/responseView.cmd?formkey=NTYzZjAxY2EtZDdkMS00ZTVmLWI2YTYtZTllZGY2YWJhNGNk&sourceId=urlshare



posted by DdaDdaSsij 2018. 12. 17. 00:55

넷플릭스에는 다양한 작품이 있습니다. 최근, 크리스마스 및 연말이 다가오면서 넷플릭스에도 연말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콘텐츠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크리스마스를 다룬 단편 애니메이션이 있어서, 흥미를 끌었습니다. 아이들과 크리스마스에 볼 수 있는 넷플릭스 콘텐츠를 한 편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영화 [안젤라의 크리스마스]입니다. 






이 콘텐츠 처음 발견하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넷플릭스는 단편 영화 콘텐츠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 여태까지 영상 콘텐츠는 한 콘텐츠를 구매하여야만 소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단편 영화는 선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SVOS 시스템 안에 있는 콘텐츠는 구매가 아니라 월 정액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시청을 하는 것에 부담이 없습니다. 오히려 짧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넷플릭스가 단편 영화 콘텐츠에 투자를 해서, 전 세계의 단편영화를 볼 수 있는 그런 마켓을 형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단편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안젤라의 크리스마스]는 단편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단편영화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함축적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금 더 임팩트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죠.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연출자의 의도가 더 잘 전달됩니다. 장편영화가 보여주기 힘든 이야기를 다룰 수도 있습니다. 

[안젤라의 크리스마스]는 안젤라라는 아이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전개는 한 남자가 자신의 어머니가 어렸을 적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 바로 안젤라입니다. 이 안젤라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간 교회에서 아기 예수가 벗겨진 채로 있는 모습을 보고 걱정을 합니다. 아기 벗고 있는 아기 예수가 추울까 봐 따뜻하게 해 주기 위해 집으로 데려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기에 판타지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현실적인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어두운 영화는 잔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닙니다. 다만, 판타지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희망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안젤라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 과정과 그 후의 이야기. 사실 앞의 이야기를 보면서는 아이의 순수함보다는 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것을 보듬을 수 있는 것은 어른이라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이 아이는 도둑입니다. 교회에 있던 아기 예수 인형을 가져간 아이고, 아이 스스로도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아이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 줄 알고 그런 행동을 품을 수 있는 그래서 그 아이에게는 자신의 그럼 마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아이에게 진정한 따뜻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영화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했으나, 이 영화는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른의 태도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스토리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안젤라의 크리스마스]는 가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 따뜻함은 옷을 껴입거나 돈으로 난방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안젤라의 가족은 허름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 바깥의 냉기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그런데, 안젤라는 아기에게 이불을 덮어주고서, 자신은 이불이 없음에도 춥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전보다 따뜻하다고 느껴집니다. 따뜻함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따뜻함을 넘어서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 느껴지는 포근함, 혹은 안정을 따뜻함이라고도 합니다.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친구와 연인과 그리고 가족과 함께하는 것은 그런 추위를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면서 따뜻함을 채우기 위함은 아닐까요?

안젤라가 혼자 집으로 오던 길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 길이 참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이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어떤 말로 이것을 표현하려고 해도 100% 표현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영화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나는 안젤라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 혹은 그런 어른이 되었을까? 그리고 안젤라가 한 작은 행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는지를 보면 사람을 생각하는 진정한 마음은 큰 계획이나 이런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그 마음이 있다면 작은 것이라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큰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진짜 아기 예수는 안젤라였습니다. 



4 / 5  따뜻한 마음과 사소한 행동이 가져오는 큰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