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진실일 것입니다. 사실을 탐구하는 뉴스나 교양 프로그램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진실은 누구나 알고 싶어 합니다.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이나 자신이 호감이 있는 상대 혹은 나에게 퇴근하라고 하는 상사의 속마음을 알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이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거짓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분명하게 밝혀내는 것도 능력이라고 볼 수 있는 세상이죠. 여러분도 진실에 대해서 알고 싶으신가요?
맹인 목격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목격이라는 말 자체가 눈으로 본다는 행위를 정의하는 단어이기 때문이죠. 영화는 그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이전에도 시각 장애인이 사건 현장에 있게 되는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한국 영화 중에서도 김하늘과 유승호가 출연한 [블라인드]라는 영화가 있었죠. 이 영화도 시각 장애인이라는 캐릭터를 잘 살린 스릴러로 나름 볼만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시각장애인 행세를 하고 다니는 아카쉬가 살인 사건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이런 설정을 가져왔을 때, 영화에게는 몇 가지 관문이 주어집니다.
1. 왜 주인공 아카쉬는 시각 장애인 행세를 하고 다니는 가
2. 정보의 불일치에서 오는 스릴을 얼마나 잘 살릴 수 있는 가
스스로 이런 질문을 가지고 영화를 관람했고, 영화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첫 번째 질문을 해결하는 방식은 상당히 영리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방식은 [어벤저스]에서 많이 보여준 방식입니다.
관객들은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지만, 영화는 그런 관객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 문제를 별 것 아닌 것처럼 간단하게 넘겨버립니다. 영화가 이런 방법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 사건이 영화의 주요 사건이 아닌 것 입이죠. 결국 영화는 아카쉬가 시각 장애인 행세를 하는 이유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행위가 중요한 것이죠.
아카쉬가 하는 작은 거짓말을 시작으로 영화는 인물들에게 오디션 프로그램 마냥 거짓말 배틀을 시키고 있습니다. 누가 더 크고, 재미있는 거짓말을 하는지 시합을 하는 것처럼 거짓말이 난무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런 거짓말이 재미의 포인트가 됩니다. 영화의 초반부터 진실에 집중하여서 영화를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그 진실을 찾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영화는 끝까지 관객들의 예상에 동조해줄 생각이 없습니다. 이런 영화가 한국에도 한 편 있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죠. (그렇다고, 이 영화가 [기생충]과 동급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인도의 스릴러
인도 영화하면 발리우드라는 단어를 떠 올릴 것입니다. 인도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동안 봐왔던 인도 영화와 스릴러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도 중독성 강한 ‘알 이즈 웰’을 만들어 낸 [세 얼간이] 또한 진지함과 유쾌함을 오가는 영화로 발리우드의 기조는 유쾌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인도 사람들의 긍정적인 마인드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그런 유쾌함이 있는 인도 영화에 스릴러라는 장르는 새로운 느낌이 들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막상 보면 음악을 음악대로, 스릴을 스릴대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쾌함이 영화의 스릴을 방해하는 느낌은 전혀 안 듭니다.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감독이 스릴을 형성하는 방법입니다. 긴장감 있는 음악으로 인한 긴장감의 조성보다는 음악은 자제하되, 날카로운 소리나 큰 소리로 귀에 거슬리는 사운드를 지속적으로 흘려서 관객들의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영화 속에서 전혀 상반된 스타일의 음악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면, 영화의 분위기를 헤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분위기는 스위치처럼 순식간에 전환되는 것이 아니기에 은연중에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형성해줘야 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형성한 것이 영화의 첫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소 생뚱맞은 장면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영화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이 장면을 통해서 영화의 긴장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이 왜 나왔는지 영화의 후반에 등장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별 일 아닌 이유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냐는 것이죠.
음악과 영화
영화와 음악은 바늘과 실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이 전혀 없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면서 괴상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음악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안 나오니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죠.
이 영화 역시 인도 영화답게 아주 많은 음악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의 직업이 피아니스트인지라 피아노 연주곡도 많이 등장하는데, 영화의 어느 장면은 [라라 랜드]의 라이언 고슬링 같은 느낌이 들고, 영화의 후반부에 마치 [라라 랜드]에 등장한 것 같은 장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전혀 상관없는 연출입니다. (감독이 공식적으로 한 이야기는 아니고, 저의 추측입니다)
그리고 감독이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연주를 하는 사이에 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상상을 해봅시다. 영화는 어떤 식으로 연출을 하게 될까요? 다른 인물들은 소리가 날 수 있는 상황은 최대한 줄이고, 인물들은 다급하게 행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스릴이 발생하기 때문에 음악 리듬에 맞춘 편집을 통해서 여러 장면을 짧은 컷으로 보여줬을 것 같습니다. 저라면 그렇게 하겠지만, 감독은 그런 뻔한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감독은 카메라를 고정시켜서, 전경에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카쉬를 후경에는 살인 사건의 현장을 정리하는 두 사람을 배치했습니다. 이런 배치를 통해서, 평화롭게 피아노 연주를 하는 아카쉬와 살인 현장을 정리하는 두 사람의 대비를 한 장면으로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죠. 그리고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이 마치 과거 무성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무성 영화가 만들어지던 당시의 영화는 녹음이 불가능해서, 화면만 찍은 영화를 상영하는 현장에서 오케스트라가 화면에 맞춰서 연주를 하는 방식으로 상영을 했습니다. 그래서 대사 없이 행동 위주의 이야기가 진행되며, 모든 장면에 클래식 악기를 바탕으로 한 음악이 연주되었습니다.
주인공이 시각적인 정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행동을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청각적인 정보가 차단된 영상을 통해서, 정보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 맞는 음악까지 들리니 더더욱 무성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것이 없는 영화입니다. 모든 부분이 의미가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어느 하나 허투루 지나가는 것이 없습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한 뜬금없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영화 중간중간에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는 별 생각이 안 들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되돌아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이 영화의 결말 또한 영화의 어느 부분에 그 암시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진실과 거짓을 분명하게 분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에는 알 수 없으나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것을 알 수 있는 장치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시 관람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재관람한다면 ‘아~’라는 감탄사가 제법 나올 것 같은 영화입니다.
다음 리뷰는 영화 [안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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