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daDdaSsij 2018. 11. 4. 21:45

 

Stigma Effect

우리말로 하면낙인효과다심리학 용어인 이 단어는 부정적인 대상으로 인지되면점점 더 나쁜 행동을 보이게 된다는 말이다. ‘피그말리온 효과의 반대말로 생각하면 된다우리 생활에서 낙인효과는 쉽게 만나볼 수 있다영화로 따지면어떤 범죄가 일어났을 때 전과가 있는 사람을 가장 먼저 의심하는 것이다물론수사를 위해서는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부터 조사를 하는 것이 맞다그 의심스러운 사람이 전과자라는 것도 편견이라고 볼 수도 있다그 사람이 출소 후 정말 착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단지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선의로 한 행동이 나쁜 의미로 비치는 경우가 있다그리고그런 시선은 그 사람에게 더 큰 일탈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어쩌면 그들은 그러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영화 [미스 백]의 그녀처럼 말이다.

과거에 이것을 소재로 단편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

 



 그녀는 너무도 어린 나이에 전과자가 되었다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만일그때 그녀를 도와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녀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때문에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엄마에 대한 원망그리고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장섭 함께 산다.

장섭 그녀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종종 해왔다영화를 보고 나면이 부분이 궁금해진다장섭은 정말로 미스 백이 좋아서 결혼을 하자고 했던 것일까잠시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영화 속에서 상아가 장섭에게 대답을 한다.

 

나만 보면 불쌍하다고 쳐다보는 네 눈빛을 평생 보고 살라고?”

 

 그녀도 어쩌면자신이 전과자라는 것에 대해 피해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사람의 이미지는 타인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그녀의 이미지 또한 주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그녀 스스로 그 이미지에 너무 갇혀있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아무리불쌍하다고 해도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을 책임지겠다고 결혼을 하자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장섭은 정말 그녀가 좋아한 것 같다영화를 보면서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나도 그녀처럼 그녀를 편견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영화는 이지원 감독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이 영화가 현실과 먼 영화가 아님을 말해준다과거옆집에 살던 아이가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고 한다그 때그녀는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지 못했고 그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이 시나리오를 집필했다고 한다이 영화를 통해 학대를 받는 아동이 한 명이라도 발견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학대 아동인 지은의 이야기다아니정확히는 백상아의 이야기다영화는 지은이라는 아이를 지켜주려는 상아의 노력이 보인다지은이라는 아이는 자신을 지켜줄 사람이 없는 아이다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화장실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고경찰서에 가서도 자신이 학대당한 것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다누군가가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결국 지은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어린 시절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했던 일 그리고 그 고통을 알기에 지은에게는 겪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자신이 외면하면아무도 도와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때문에지은이를 더더욱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그런 그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장섭이다때문에그녀를 도와주려고 한다장섭이 그녀의 엄마를 찾아주려고 했던 것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과거의 일로 상아를 보려고 하지 않았던 엄마가 왜 그녀에게서 멀어졌는지 알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그녀를 미워해서가 아니다그녀를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우리가 더러운 손으로 누군가와 악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처럼그녀를 위해 그런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그녀에게 도망치라는 말을 한다이 말을 상아는 정섭에게 비슷한 행동으로 보여준다그녀는 자신을 도와주는 정섭이 자신과 비슷한 취급을 받을 것에 대한 걱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그리고 그런 이유로 지은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자신이 겪어봤기 때문에그 고통이 얼마나 큰 지 알기에 그것을 지은이 겪는 것은 싫었을 것이다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만들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이러한 생각은 영화 마지막 다리 밑에서 두 사람이 나오는 장면에서 보여줍니다결국부족하더라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서로를 지켜주는 것이고 같은 처지이기에 서로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기에 더 위로해줄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상아도 지은과 함께하면서 자신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자신은 평생 혼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그저 이 동네를 떠나서 살 생각뿐이었다지은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할 일상에 대해 접했다그녀에게 아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녀의 인생과 먼 일이었다아이 옆에서 담배를 서슴없이 피우고무작정 옷을 사 입히기도 한다지은이 자신의 손을 잡았을 때지은과 함께 놀이공원을 갔을 때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몰랐지만시간이 지나면서 알았다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상아가 지은과 있을 때상아가 욕을 하는 장면이 있다지은이 따라 하자따라 하지 말라며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하자 지은이 말한다.


미스 백은 미스 백이 싫어요?”


 그런 것 같기도 하다결국은 자신이 자신을 부정했던 것이다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정섭을 빼면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다경찰서에도 힘들게 이름을 써내자그녀를 전과자라며 의심을 하며 쳐다본다지은의 부모라는 사람들도 그녀의 전과를 이용하기도 한다그 누구도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못하다때문에그녀는 스스로에게도 호의적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영화의 주제처럼 학대 아동에 대한 현실을 아주 잘 보여주는 영화다학대 신고가 들어왔을 때다시 부모의 집으로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다른 사람의 집안일에 신경을 안 쓰려는 정서가 있다영화 [목격자]의 마지막 장면처럼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도 현대인들은 신경 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영화에서도 앞집에 살면서도 앞집이 어떤 환경인지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단순히자신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좋은 주제와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편집의 디테일은 아쉬운 영화였다컷 연결이 조금씩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크게 티가 나는 부분은 아니지만 감정의 흐름을 이어가야 할 장면에서 조금 어긋하는 부분이 느껴졌다그리고 9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지만영화는 그리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부수적인 사건이 부족하게 느껴졌다억지로 시간을 늘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조금은 뻔한 연출이나 설정연결들이 눈에 보였다그럼에도그것들을 덮을 수 있는 장점들이 있는 영화다.

 우리에게 좋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특히, ‘백상아라는 인물이 지은을 지나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지은을 도움을 주기 위해 애쓰는 이유에 대해 감정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그리고 그것을 한지민 배우가 좋은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영화에 더 집중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한다또 영화 속에 다양한 여성이 등장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억지로 넣은 느낌이 아니다남녀를 구분해서 배역을 선정한 것이 아니라이 영화에서 보이는 악역과 주인공 상아와 지은을 도와주는 사람들 모두 남자와 여자가 함께 나온다감독의 세심함이 돋보인다영화 내에서도 그녀의 세심함이 돋보인다.

어둠 속에서 시작한 영화지만밝은 곳에서 끝나는 영화다.

 

 

4 / 5  그 아이는 결국 '미스 백'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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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daDdaSsij 2018. 11. 4. 21:43



독특한 영화입니다. 보통 사춘기 소녀를 영화에서 다룰 때는 사랑스럽게 다루기 마련입니다. 혹은, 아주 어둡게 다룹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밝은 분위기에서 사랑스럽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대게, 영화에서는 영화의 주인공이 매력적이라고 느껴지게 하거나, 관객들의 그의 편이 되게끔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기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독특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사춘기 소녀 '용순'의 심리를 아주 제대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사춘기를 다룬 영화는 많았지만, 그것을 단순히 행복했던 추억으로 미화하거나, '그땐, 그랬지'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주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내용을 철저하게 용순의 시선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순이 체육 선생님을 짝사랑하고 있는 것을 혼자 사귄다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하는 것도 용순의 시선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용순이 짝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둘이 사귀는 사인지 헷갈리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것이 용순의 착각이라는 점은 체육 선생님과 주임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나타납니다. 






 




우유부단하거나, 현실적이거나


  주임 선생님은 체육 선생님에게 여자 고등학생들이 남자 선생님을 좋아하면 마치 사귀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조심하라는 식의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번 방학이 끝나면 정교사 계약을 해준다며, 체육 선생님에게 이번 체육대회에서 성적을 내줄 것을 당부합니다. 그렇습니다. 체육 선생님이 용순에게 잘 해주었던 것은 자신을 위해서 그랬었다는 점도 이 지점에서 보입니다. 단순히, 자신의 학생이어서 혹은 용순이 정말 좋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는 것이 이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또한, 이 술자리에서 체육 선생님은 주임 선생님에게 지속적인 아부 아닌 아부를 합니다. 별거 아님에도 주임 선생님을 칭찬을 합니다. 이러한 부분들도 체육 선생님의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의 행보를 잘 보여주게 될 장면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체육 선생님에 대한 답답함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그는 상당히 우유부단한 캐릭터로 나오지만, 사실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내에서 그는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에게 용순은 해결해야 할 사건 중에 하나인 셈이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영어 선생님과 잘 되기 위한 방해물이기도 하고, 자신을 출세를 하게 해줄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용순에게 마냥 모질게 하기도, 잘해주기만 하기도 애매한 상황입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체육 선생님이 생각을 하고 행동하려고 하면, 그보다 반박자 빠르게 용순이 행동합니다. 때문에 사건은 점점 커지게 되는 것이죠. 

 사실, 현실에서 사람들도 체육 선생님과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큰일이 터졌을 때,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가장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결정을 내리기 위해 생각하는 시간 동안 자신의 목표를 위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용순의 추진력에는 감당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른이라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돌진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조금 덜 루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것을 영화에서는 체육 선생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결을 하려는 자, 이야기를 하려는 자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용순과 체육 선생님의 치킨 장면입니다. 단순히 치킨 장면이라고 하면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이라면 의아에 하시겠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어떤 장면인지 아실 겁니다. 이 장면에서 용순이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에 대해 고백을 합니다. 영화에서 용순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려 합니다. 자신의 영역이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려는 행위에 대해 거칠게 저항합니다. 때문에, 문도 잠그고 다니고 누군가가 자신의 약점에 대해 건드리는 것을 상당히 싫어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항으로 표출됩니다. 

  용순이 체육 선생님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 체육 선생님도 처음 들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하지만, 체육은 용순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합니다. 단순히, 지금 있는 이 문제에 대해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용순에게 계속 되묻습니다. '뭐가 문제야?' 하지만 용순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렇습니다. 용순은 지금 체육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죠. 어쩌면 용순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장 자신의 문제 해결에 급급한 체육 선생님은 그런 용순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해결해야 할 일이 우선이니까요. 

 어쩌면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한 문제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이미 시간이 지나서 꽉 메어진 매듭처럼 푸는 데까지 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여서 매듭을 풀어야 하지만 사람을 대게 풀어지지 않은 매듭을 가위로 잘라버리곤 합니다. 그리고 그 가위로 잘라버린 매듭은 다시는 쓰지 못합니다. 그런 식으로 계속 가위로 잘라버리면 결국엔 매듭을 지을 줄조차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지는 않을지 걱정됩니다. 








 알게 되자, 이해되는 것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많이 듣는 대사가 있습니다. '고개 들어' 체육 선생님이 고개를 숙이고 뛰는 용순에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고개를 숙이며, 뛰는 용순의 심리는 어땠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되다 보면 용순이 고개를 숙이고 뛰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야기를 체육 선생님에게 합니다. 이 지점에서 둘의 관계가 일방적이라는 것이 나타나게 됩니다. 용순은 자신이 왜 고개를 숙이고 뛰는지에 대해 체육 선생님에게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들은 체육 선생님은 계속 용순에게 고개를 들고뛰라고 합니다. 용순이 고개를 숙이고 뛰는 것은 단순하게 습관이거나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용순이 고개를 숙이고 뛰는 것을 좋아합니다. 땅을 밟고 지나가는 느낌이 마치 자신의 걱정들을 밟고 지나가는 것 같아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체육 선생님도 자신이 뛰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야기를 합니다. 숨이 찰 때까지 뛰면 머리가 단순해져서 걱정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둘은 어찌 보면 같은 이유도 다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용순뿐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이 체육 선생님이 용순을 좋아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것은 그녀에게 무관심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현실적인 캐릭터인 체육 선생님이 용순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의 이야기일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어느 누구나 사춘기를 지납니다. 하지만, 사춘기 청소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한 철의 여름처럼 무더웠던 시기가 지나면 추억으로 남는다고 하지만 그 추억은 미화가 되기 마련입니다. 당시에 느꼈던 세세한 감정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사춘기 청소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용순이 영화에서 겪는 감정들은 대게 처음 겪는 감정들입니다. 많은 감정들이 생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이겠죠. 처음 겪는 일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이 없습니다. 이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아니죠. 스스로 헤쳐나가야 합니다. 때문에 상당히 혼란스럽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는 행동이 어떤 이유가 있어서인지 진심으로 알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학생들의 행동을 보며 '결국 지나갈 일'이라도 치부하면서, 그들을 나무랄 것입니다. 영화에서도 그런 시선들이 다수 있습니다. 그런 시선들이 많이 질수록 용순은 더더욱 자신의 공간에 갇히게 되는 일이 됩니다. 

 용순의 새엄마가 처음으로 용순의 방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용순의 방을 둘러보면서, 용순의 현재 상태에 대해 짐작을 하게 됩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 혹은 거짓말. 용순의 방에 처음으로 들어오게 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의 편에 서주는 어른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녀가 아빠를 데리고 용순의 방에 들어가게 합니다. 아빠는 용순을 챙겨주면서 방 벽에 붙어있는 고장 난 선풍기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선풍기에는 노끈이 묶여있습니다. 그 노끈을 풀면서 과거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용순이 알고 있지 못했던 아빠의 이야기,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 

 자신이 몰랐던 아빠의 이야기를 들은 용순은 처음으로 아빠를 챙기는 듯하게 들리는 말을 합니다. 그것도 아주 퉁명스럽게요. 상관없습니다. 자신이 몰랐던 아빠의 이야기를 들은 용순은 아빠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에 대해 변화가 생깁니다. 과거를 흘려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고개를 숙이고 뛰던 용순은 과거가 빨리 지나가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을 흘려보내면서 숙였던 고개를 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답답한 캐릭터. 어쩌면 이상적인 캐릭터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청소년 사춘기의 반항심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춘기에 겪게 되는 일들, 자신의 신체 및 감정의 변화, 환경의 변화들은 대부분 처음 겪는 일들입니다. 그런 것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사춘기 자녀에게 무작정 '너 불만이 뭐야? 원하는 게 뭐야? 왜 말을 안 해?'라고 할 자격이 있을까요? 정작 우리들은 사춘기 학생들의 이야기가 안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에게 이야기를 요구하기만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누가 자신의 마음을 열겠습니까?

 단순히, 우리가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은 해주기 위해 노력을 해서 해줄 수 있게 되면 그들은 이미 성인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용순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도, 용순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어른들은 영화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현실에서도 조차 말이죠. 육상은 용순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영화 그 어디에도 용순은 육상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무엇이든 끝까지 해보려고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녀가 처음으로 좋아하게 되는 것이 체육 선생님이었던 것이죠. 그녀는 처음으로 좋아하는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끝까지 해봤습니다. 그리고 알게 될 것입니다. 포기라는 것을 말이죠. 그렇게 그녀는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포기할 줄 알았을 때,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어선생님께 '피해 가지 않도록, 제가 잘 해결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체육 선생님은 진정한 성인이겠습니다. 이상적이지는 않더라도 현실에서는 말이죠. 

 어쩌면 영화는 용순의 패기를 부러워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춘기 소녀라도 그 어떤 누구도 용순처럼 자신의 뜻대로 막 휘두르고 다니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용기 있게 누군가에게 매달려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부러움이 포함될 수도 있겠죠. 흔히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둘리를 보면서 고길동이 불쌍해지면 어른이 된 것이라고. 영화 [용순]을 보면서 답답해하던 우리들은 어른이 된 것은 아닐까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사춘기 학생들의 감정에 대해 다룬 영화는 과거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현재 청소년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줍니다. 청소년들은 어리숙함과 어른스러움을 가지고 있는 상당히 애매한 존재입니다. '어른스럽지 못하게 왜 이래?', '학생은 학생다워야지.'이 두 가지 말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 청소년입니다. 어른도 아닌, 아이도 아닌. 그래서 더욱 기특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더욱 귀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현실적으로 보여준 [용순]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느껴집니다. 최덕문 배우도 이 영화를 찍으면서 '다큐멘터리' 같음을 생각하면서 연기를 했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본다면 현재 자신의 상황에 대한 대변이 이루어질 것이고, 어른이 본다면 자신이 학생에게 대했던 행동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DdaDdaSsij 2018. 11. 4. 20:59


글을 쓰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영화를 본 후 쓰고 있는 지금 이 글도, 첫 문단을 쓰지 못해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이 영화처럼 지금 벌어지는 나의 이야기로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작가 ‘제리 샐린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입니다.

 

 


 

한 사람의 생애를 다룬 영화는 자주 등장하는 영화의 소재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본 투 비 블루] [이미테이션 게임]입니다. 그들은 큰 업적을 남겼지만,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한없이 약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미친 것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은 그들의 재능이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들이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순수했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 밖에 몰랐던 바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리 샐린저’ 역시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전쟁이라는 큰 상처를 겪게 됩니다. 전쟁의 상처는 누구에게나 큽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예술가에게는 그것이 더 크게 다가올지 모릅니다. 자신의 기억을 다시 되돌려 봐야 하고, 그것을 표현해야 합니다. 끔찍한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습니다. 오히려, 단순한 반복을 하는 일을 했다면 그의 기억은 더 쉽게 잊힐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런 명작은 탄생 안 했을지도 모르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이 있지만, 공감이라는 코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제리의 소설을 열광하는 사람들은 그 소설 속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라며 큰 공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현실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그는 결국 자신의 현실과 대면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현실은 무척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죠.

 

어쩌면 그래서 출판사는 독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이 이야기 속에 있을 때 만이라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끝까지 고집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정작 자신의 소설을 재미없다고 한 사람에게 끌렸습니다. 그렇게 많은 출판사 사람들이 그의 소설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는 자신의 소설을 무조건 좋다고 한 출판사의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듣고 싶지 않던 이야기도 듣던 과거의 순수함을 전쟁이라는 불행이 빼앗아 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그가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럴수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때, 이랬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영화 [라라랜드]의 결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고 환상적인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현실은 현실이니까요.

 

그는 전쟁을 통해 상처와 트라우마를 얻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글쓰기를 통해 떨쳐내려고 했었죠. 그는 무엇을 위해 글쓰기를 했던 것일까요?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전쟁 전 순수하게 글 쓰는 것이 좋아서 시작했던 그와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습니다. 평소에는 필요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 자신이 나약해진 순간에는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죠. 이 영화에서 그가 가지게 되는 신앙심도 그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과거,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는 종교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나약해지고 기댈 곳을 찾지 못하게 되면서 접하게 된 것이 종교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의식처럼 거해지고, 그것이 반복되면 일상 중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커져서 어느새 인생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죠. 그 일부가 너무 커져서 처음 가진 목표가 오히려 하나의 의식을 방해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결국 그 소설은 자신의 과거를 떨쳐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지만, 그것은 자신을 더욱 옥죄는 수단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그 소설 속 주인공이 진짜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듣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히 자신이었기 때문에 그 속마음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고통을 말하는 것조차 그에게는 고통스러울 겁니다.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이야길 하면서 그는 다른 아이들을 잡아주고 싶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가 말하는 아버지의 꿈. 그리고 아버지가 꿈을 포기하게 된 이유들이 모두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이 해봤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못 해봤기 때문에 너는 그렇게 해보라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그런 과거를 겪었음에도 자신의 아버지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진심이 전해지는 아버지의 고백은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진심을 담은 이야기는 어떻게 이야기를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리의 소설인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열광을 받았던 이유는 그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이 소설을 통해 전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심을 독자들이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4 / 5  나처럼 살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