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일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불가항력이라는 말은 상당히 어려운 단어일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는 과정은 그 의미를 먼저 알게 되고,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를 알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는 것 또한 당시에는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몰랐지만, 그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를 알게 된 뒤로는 그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성장은 이런 과정을 거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일을 겪으면서 그것을 대처하게 되면서 그 상황에 대한 경험이 생기면 다음에 비슷한 경우가 생겼을 때, 이전보다 조금은 나은 행동과 결정 그리고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 속 아이들은 불가항력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가진 노력을 다 해보지만,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아이들이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 성장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또한 비슷합니다. 비교적 많은 경험을 해봤다고 할 수 있는 어른에게도 힘들 것 같은 상황을 맞이한 아이들이 그 상황을 이겨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안쓰럽기도 하면서, 기특하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은 어른보다 더 현명한 대답을 내놓기도 합니다. 윤가은 감독의 전작인 [우리들]이 그랬습니다. 싸우고 온 동생에게 왜 복수하지 않았냐는 이야길 하자 동생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언제 놀아?”
이 대사가 우리의 마음을 건드린 것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 우리들의 행동에 대한 반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한 가장 현명한 해결책은 오히려 간단하고,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피하던 경험이 한 번씩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자기 자신을 성찰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윤가은 감독이 아이들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사람은 어린 시절을 겪었습니다. 이미 경험해본 일이라면, 그것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지만 잊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너무 자신 위주로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아이들은 왠지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그녀가 아이들 영화를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해봅니다.
YCU (Yoon’s Cinematic Universe)
전편과의 비교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제목부터 비슷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주인공이라는 점, 영화의 배경이 여름방학이라는 점과 같은 동네에서 이뤄진다는 것이죠. 실제로 윤가은 감독은 [우리들]에 나왔던 아이들과 같은 세계관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중학생이 된 지아는 동네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우리집]의 아이들이 떡볶이를 먹으러 간 분식집에는 선이와 윤이 그리고 부모님이 사장님으로 등장합니다. 하나의 오빠인 찬의 여자 친구로 보라가 등장합니다.
윤가은 감독은 [우리들]의 아이들이 잘 성장하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유를 핑계삼아 자신이 보고 싶어서 [우리들]의 배우들과 함께 촬영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집]의 배우들도 윤가은 감독의 차기작에 나와서 잘 있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어필했다고 합니다.
비교를 하자면, 두 영화는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같은 감독과 같은 제작진, 같은 제작사에서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안 비슷하게 하려고 해도 많은 부분이 닮아 있을 것입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카메라의 위치일 것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카메라의 높이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췄습니다. 때문에 카메라는 하나, 유미, 유진의 눈높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어른이 앉는 것처럼 영화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은 아이들을 아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동등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는 가치관의 반영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집]의 촬영 현장에 있던 촬영 수칙에 대해서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아이들을 배우와 동등한 위치에 두고, 그들에게도 연기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윤가은 감독은 이에 대해서 전작인 [우리들]에서 스태프들이 대기시간에 아이들을 위해서 놀아주곤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자신의 촬영을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더불어, [우리들]을 촬영하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많았는데 이번 촬영에서는 덜 미안하기 위해서 이런 수칙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실질적으로 그 수칙을 가장 많이 어긴 사람은 본인일 것이라는 자백 아닌 자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비교에서 시작되다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어딘 가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모든 사람이 없는 상황에 혼자만 있다면 고독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비교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물건은 제품의 스펙에 대한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을 가지고 여러가지는 비교를 하는 일은 우월을 가리기 위한 행동으로 자신에 적합한 물건을 찾기 위한 좋은 행동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이나 불행 및 여러가지 요소들은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고, 비교를 한다고 내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비교를 하는 행위가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입니다. 특히나 그 비교 상대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비교로 이뤄지니 그 스트레스는 더욱 클 것입니다.
하나가 여행을 생각하게 된 것도 가족과 놀러가는 다른 가족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가는 가족들의 뒷 모습은 하나의 눈에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입니다. 이런 비교는 하나와 유미에게도 이뤄집니다. 하나의 집에 놀러 간 유미는 하나의 집을 보며 부러워합니다. 옥탑방에 살고 있는 자신에 비해, 하나의 집은 깔끔한 아파트이기 때문이죠. 유미가 그런 하나에게 부럽다고 말을 하자, 하나는 유미를 부러워합니다. 좋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에게는 좋은 집보다는 자신을 챙겨주는 어른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유미의 부모님은 멀리 있지만, 유미와 부모님의 관계는 좋아 보였기 때문이죠.
두 아이 모두 서로의 사정을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겉 모습으로 본 서로의 모습을 부러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미의 입장에서는 좋은 집과 부모님이 지속적으로 함께 있는 것이 좋아 보이지만, 하나의 입장에서는 유미와 부모님의 관계 그리고 유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떡볶이 가게에서 아이들이 떡볶이를 먹으면서 대화를 나눕니다. 이 가게에는 [우리들]에 나왔던 선의 가족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가 원하던, 제주도 여행을 간다며 들뜬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는 그런 선의 가족을 마냥 행복한 가족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가 [우리들]에서 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는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하나도 유미의 시선에서는 자신보다 행복한 삶을 사는 인물로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일, 책임, 소속감
하나는 부모님의 잦은 부부싸움으로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에 싸우던 부모님이 가족 여행 이후 사이가 좋아졌다고 생각한 하나는 자신이 아닌 부모님의 사이를 위해서 여행을 가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엄마가 바쁘다는 핑계로 안 가려고 하자, 엄마가 하는 집안일을 나서서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하는 것은 결코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님은 그런 하나의 행동에 더욱 미안함을 가질 것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자신의 딸이 한다는 것은 부모로서 책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죠.
그리고 유미의 집이 이사를 가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도 하려고 합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동생이지만, 이미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고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자신의 여행 계획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자 유미의 집을 지키는 것에 더 힘을 쏟습니다. 이런 행동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는 하나의 생각일 것입니다.
이는 책임감과도 연관 지어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부모님의 사이가 안 좋아진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잘하면, 부모님을 기분 좋게 해 주면 사이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는 하나가 유미의 집을 지켜주려는 것도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유미의 집을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 자신의 비밀 상자를 보관합니다. 그 순간 하나와 유미, 유진은 우리가 된 것이고 하나의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집에서는 그 책임을 다 하지 못했지만, 유미와 유진에게는 그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가 이렇게 가정을 지키려고 하는 동안 하나의 오빠인 찬이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찬이는 하나와 2~3살 차이가 나는 중학생입니다. 하나가 찬에게 이야기를 하면, 찬이는 눈치가 없다는 말과 어려서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죠. 아마, 찬이는 하나가 겪고 있는 과정은 이미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아이들이 겪는 감정을 생각해보면, 찬이는 그 감정을 아이들보다 미리 겪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찬이도 과거 하나처럼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노력을 해봤지만 그것이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의 싸움을 인지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죠. 한 마디로 무기력한 상태인 것이죠. 이는 맨 처음에 언급한 불가항력이라는 것을 경험한 뒤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 안에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을 외부의 요소인 여자 친구를 통해서 해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하나에게는 유미와 유진이 그런 요소가 되는 것이죠. 그것이 유미와 유진을 위하려는 하나의 마음일 것입니다. 자신이 받아왔던 것을 동생들에게는 느끼게 않게 하고 싶지 것이죠.
하지만, 어느 순간은 자신의 부모님과 비슷한 행동을 보입니다. 하나와 유미가 싸우게 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장면을 통해서 하나는 자신의 어머니가 했던 말을 비슷하게 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생각해보면, 유미 또한 자신의 부모님의 행동을 비슷하게 따라 하고 있던 것이죠. 물론, 본인들은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 앞에서는 찬물도 가려 마셔야 한다는 것이죠.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하나가 유미와 유진에게는 그 책임을 다하려는 것은 소속감이라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들]에서 보여줬던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에 나왔던 인물들이 갈등을 빚었던 것은 자신이 누군가와 연대를 이루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이런 점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실제 가정에서도 아이들에게 어떤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소속감을 들게 하여서,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책임이라는 것은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집단에서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책임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 집단에서의 중요도는 높아질 것입니다.
영화 속 하나는 집에서 그런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자신의 집에서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유미와 유진은 하나에게 많이 의존합니다. 그만큼 책임감이 높아지고,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자신은 자신이 책임지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는 유미와 유진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우리 집에서 같이 식사하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집’이라는 단어와 ‘식사’ 일 것입니다. 하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혼자서도 밥을 잘 챙겨 먹고, 부모님에게도 같이 밥을 먹자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여담이지만, 하나를 연기한 김나연 배우는 실제로 요리를 좋아해서, 어머니께 직접 미역국을 끓여드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역시, 저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하나의 부모님이 식사하는 장면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아이들과 같은 식탁에 앉은 아버지는 혼자서 컵라면을 드시고 계셨고, 이 마저도 퇴근한 엄마의 잔소리에 다 먹지도 않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을 식구라고 부릅니다. 영화에서 하나와 식사를 하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지금 하나의 식구는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집에서는 혼자 식사를 합니다. 누군가와 식사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마저도 식사를 하다가 다른 사건이 생겨서 식사를 끝마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유미와 유진의 집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선보이며 같이 식사를 합니다. 하나와 유미, 유진은 같은 식구가 되었고, 유미가 모든 박스를 이용해서 그들의 집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우리 집’이 될 것입니다.
하나는 같이 밥을 먹는 것을 원합니다.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그런 하나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이 영화의 결말을 상당히 감명 깊게 다가옵니다. 영화가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깊은 감동과 감상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가족들에게 밥을 먹자고 하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늘을 받아들이자 (스포일러 포함)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이들이 해변에 있던 장면입니다. 집을 신나게 부순 뒤에 (촬영 현장에서 아이들은 이 장면을 찍을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집을 부수는 것이 재밌었다고…. 아이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 해변을 걷다가 한 텐트를 발견합니다. 이 텐트에 있던 임신 중인 부부는 아내가 진통을 호소하자 급하게 차를 타고 떠납니다. 그리고 텐트에 남겨져 있던 감자로 추정되는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아이들은 텐트에서 밤을 보냅니다. 그리고 텐트 속 대사들이 인상적입니다. ‘우리끼리 살까?’라는 이야기와 함께 자신들만의 상상을 해봅니다. 그리고 유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우리 뭐 먹고살아?’
아직 아이들은 스스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텐트가 등장했던 것 또한 스스로 살아가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주는 어른의 그늘이라고 생각해봤습니다. 만약, 어른의 도움 없이 이 친구들은 그날 밤을 버틸 수 있었을까요? 이는 아이들끼리 생존한다는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른에게 연락이 안 되는 문제가 생겼다면, 연락을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입니다. 아이들처럼 무작정 찾아가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길을 모를 때는 자차의 네비나 택시를 이용했을 것이고, 술 취한 아저씨가 잠들어 있는 것을 무서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른들은 당장 앞에 놓인 문제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미래를 내다보고 행동을 할 것입니다.
자식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을 하고, 이사를 가는 것을 유미와 유진의 부모님도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 피할 수는 없는 일이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눈 앞에 있는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사를 가기 싫어하는 것이고, 가족 여행을 피해서 가출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당장 벌어질 것 같은 일을 회피하기 위함이죠.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과의 여행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죠. 매번 이사를 다니기 때문에 친구가 없었던 유미는 하나에게 ‘언니는 계속 우리 언니 해줄 거지?’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유미는 자신보다는 유진을 챙기다 보니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항상 스스로 챙겨야 했던 유미에게 하나는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언니이지 친구였던 샘이죠.
하나 또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돌아올 가족들을 기다리며 식사를 준비합니다. 가출한 하나를 찾기 위해 한바탕 난리를 폈던, 가족들은 집에 있는 하나를 보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합니다. 그런 가족들에게 하나는 같이 밥을 먹자는 이야기를 하고, 하나는 자신의 레시피 책에 있던 요리를 하여, 가족들에게 대접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들이 식사하는 소리와 숨소리로 영화를 마무리합니다.
자잘한 이야기들
1. 하나는 유미에게 자신의 부모님이 이혼한다는 것을 들킬 것 같은 상황이 생기자, 유미에게 더욱 화를 냅니다. 이는 하나에게 마지막 자존심과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아이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이는 유미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미의 부모님 또한 유미에게 이사를 간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사를 가야한다는 것을 선뜻 말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미가 진짜 무서웠던 것은 이사를 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집에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자신의 집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부모님이 이사를 간다고 말을 했다면, 그 생각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2. 하나의 아버지가 주대리와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하나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핸드폰을 숨깁니다. 하나는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큰 싸움으로 번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른 척했던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하나가 노트북에 우유를 쏟았던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여자의 촉은 안 좋은 일에는 더욱 무섭게 반응하기 때문이죠.
3.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하나의 어머니가 집에 일찍 돌아온 날입니다. 그녀는 왜 일찍 퇴근을 했던 것일까요? 그녀가 했던 말을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자신의 문제를 하나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집에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민이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서로에 대해서 답답함만 가지고 있는 것이죠.
4. 마지막으로 하나와 유미는 서로의 집으로 돌아가 자신들에게 벌어질 일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유미는 하나에게 ‘언니는 계속 우리 언니 해줄 거지?’라는 물음은 변화를 맞이할 자신에게 변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 또한 ‘우리 얼른 밥 먹자. 든든하게 먹고 진짜 여행을 준비하자’라는 말을 통해서 부모님의 이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의 가족, 식구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했음에도 이 영화에는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영화가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윤가은 감독이 만들었던 단편 영화 중에서 [손님]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한 소녀가 아빠의 내연녀의 집으로 쳐들어갑니다. 하지만, 집에는 2명의 아이들만 있었죠. 허름한 곳에 부모님 없이 두 아이만 있던 모습을 보고 있는 소녀는 시간이 갈수록 변화합니다. 그리고 그 소녀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아마 그 소녀가 만든 영화가 [우리집]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른들의 사정을 알리 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아무런 잘못이 없는 아이들이 왜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의 입장에서 본 이 영화는 더더욱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게 됩니다. 아이들의 ‘아이다움’을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 되자는 작은 포부를 가지게 합니다.
[우리들]보다 훨씬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 윤가은 감독을 한국 영화계의 희망이 될 감독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와 동시에 윤가은 감독은 빨리 다음 영화를 만들어 오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