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daDdaSsij 2019. 8. 22. 17:46

“근데, 왜 나는 뭔가 와 닿지가 않냐?

저는 영화 [독전]에서 조진웅 배우가 했던 이 대사를 좋아합니다. 어디에 갔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대사라고 생각하고, 종종 이런 표현을 일상생활에서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조진웅 배우가 주연으로 나온 이 영화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 번째 줄 로 이 대사가 적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관람하고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우선, 저는 이 영화가 정말 재미가 없었습니다. 개그도 유치하고, 그냥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내뱉은 느낌이 듭니다. 지금부터 저는 이 영화가 왜 재미없었는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전에 좋은 점 하나만 먼저 말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조진웅, 손현주 배우가 함께 하는 장면에서는 그 카리스마가 상당히 좋았고, 박희순, 최원영 배우의 대사를 처리하는 능력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다른 배우들은 연기력을 보여줄 장면이 없었는데, 그 와중에 유독 튀는 분이 한 분 있었습니다. 굳이 누구라고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미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광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코미디 영화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저도 이 영화는 가벼운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사실은 영화를 보면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코미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속에는 곳곳에 관객들은 웃기기 위한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꽤 진지하게 시작됩니다. 한명회가 왕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위해 광대를 찾는 설정으로 시작하는데, 영화 초반 10분은 광대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인물은 이런 능력이 있고, 저 인물은 저런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그리고 바로 한명회가 광대들의 대장인 덕호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진지한 톤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 장면 또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개그를 선보입니다. 다른 광대와 다른 의견을 내는 덕호를 말리려는 인물들의 모습은 나름 납득이 가능한 사항입니다. 진지한 분위기를 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줌을 지립니다. 와… 이게 2019년 영화에 나올 수 있는 개그인가요? , 이 개그가 나온 영화가 한 편 있긴 했습니다

 

광대 중 한 명인 진상은 그림을 잘 그리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그림이 어딘지 모르게 수상합니다. 너무 사진 같지 않나요? 실제로 그런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것을 몇 분, 길어봐야 몇 시간인데 그 시간 안에 나올 수 있는 그림일까요? 언뜻 봐도 성인 키보다 높은 크기인데 말이죠. 그리고 결정으로 이 그림 자체가 필요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길에서 숲 속이 보이지도 않을뿐더러옆 쪽에 나무가 우거진 곳이 있었으니 그쪽에 있었다면 그림이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캐릭터의 상실

이 영화의 광대는 총 6명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덕호와 함께 다니는 4명의 광대들과 그의 스승이라 하는 말보라는 인물입니다. 특히 덕호와 함께 다니는 4명은 각자 자신만의 장기가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됩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서, 광대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초반 30분에 그 모든 것이 등장하고, 이 인물들의 존재감은 사라집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들의 능력을 100% 발휘해서 사건을 해결하기보다는 그저 덕호의 지시에 따르는 하수인 정도로만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왜 덕호의 의견을 따르려고 하는지덕호는 왜 이들의 대장 역할을 하는지 설명이 하나도 없습니다

비슷한 영화인 [조선 명탐정]을 보면, 주인공인 김민과 그를 모시는 서필이 등장합니다. 김필은 자객의 습격을 받지만, 서필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서필과 그 길을 함께 하게 됩니다. 아주 좋은 설명은 아니지만, 영화는 나름 설명을 하려고 하는 노력은 보이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런 관계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덕호와 말보의 관계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다른 캐릭터인 진상은 영화 중간에 덕호와 뜻을 함께하지 않고 떠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시 돌아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돌아왔으니 맞이해주자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대사를 통해서 자신의 신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안 하겠다는 의사 표현을 하는데, 그렇다면 그 인물의 신념은 무엇이며, 그 신념을 왜 지키려고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영화에서는 그런 설명이 필요합니다

 

 

[명당]이 보여준 문제

모든 것은 풍수지리의 영향을 받습니다. 영화 [명당]이 보여주는 영화의 내용입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 속 내용은 풍수 지리가 왕을 만들고, 관력을 만드는 만고의 진리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정치적으로 억지로 엮으려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영화 [관상]이 관상이라는 소재와 정치적인 연결을 보여줌에도 좋은 영화라 평가받는 것은 관객들에게 그 당위성을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관상이라는 소재에 대해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보여주어 이런 이야기가 실제로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죠. 그리고 영화 속 관상이 인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 관상과는 별개로 이 인물은 원래 그런 인물이었고, 그 결과를 관상으로 미리 예상해보는 것이죠. 영화의 결말을 통해서 이야기하려는 메시지 또한 괜찮았고, 그 표현방법도 좋았습니다

[광대들] [관상]과 마찬가지로 사육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수양대군, 세조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한명회가 등장합니다. 물론 두 영화의 성격은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은 두 영화가 겹치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광대들]에서는 이 풍문을 조작하는 일을 너무 쉽게 보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풍문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백성들의 모습이 나오는 것을 기대했는데, 영화 속 백성들은 너무 쉽게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마치, [내부자들]의 대사처럼 대중은 개, 돼지인 것일까요

풍문을 조작하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여론을 조작하는 일입니다. 이는 큰 범법 행위입니다. 그런데 지시한 사람은 그 처벌을 받는데, 왜 실질적인 행동을 보였던 사람은 왜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죠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당해서 도망갈 수 없었다고 보기에는 진상은 중간에 잘 도망갔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가담의 대가로 집과 관직을 받았습니다. 할 말은 하고 산다는 광대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돈과 관직을 위해서 한명회의 뜻에 가담한 것 아닌가요

 

그리고 가장 어이가 없는 것은 이 영화의 결말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정말 뜬금없는 카메오 한 분이 등장하는데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장면이 상당히 의미가 있거나, 재밌는 장면도 아닙니다.

 

 

차라리 코미디 영화를 표방하고 만들었다면 이런 구성이 이해라도 됩니다. (그나마 나은 편이라는 것이지, 코미디 영화라고 한다고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 케이퍼 무비처럼 인물들의 치밀한 작전으로 이뤄지는 장면에 대한 기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정말 단순하게 넘어가서 진짜로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그러다 보니이 영화가 만들어진 의도가 사회적인 비판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는 영화 곳곳에 그런 장치들이 존재해야 합니다

혹시 이 리뷰를 보시는 분들 중에 영화가 재미있으셨다면, 왜 재미있으셨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재밌게 보신 분들이 많은데,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와 닿지 않네요.

 

posted by DdaDdaSsij 2019. 8. 19. 17:31

 

아래의 내용은 주관적인 내용은 담은 글로 실제 평론가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영화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고려하게 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장르, 배우, 감독, 스토리 등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많은 분들이 평점이나 관람평을 확인하고 영화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평점에도 맹점은 존재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를 하는 의미로 ‘좋아요’를 눌렀다고 해도 나에게는 재미없는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특정 다수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영화의 평점을 조작할 가능성도 있고, 관람평이나 리뷰를 본다고 하더라도 나와 취향이 다른 사람들의 관람평을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항상 같은 기준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이 필요하고, 영화의 깊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영화 평론가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 영화 평론가들의 관람평이 일반 관객에게 외면받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관람평에 대해서 비난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많이 보이는 내용은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재미만 있으면 된 것이지 너무 많은 것을 따진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정말로 평론가들은 재미있는 영화에도 너무 많은 것을 따질까요? 영화 평론가들은 무슨 기준을 가지고 영화를 평가하는 것일까요?

오늘은 영화 평론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영화 평론가는 어떤 활동을 할까?

 

영화 평론가는 말 그대로 영화에 대해서 평론을 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평론이라는 말에 정의에 대해서 정확하게 살펴보면, 네이버 국어사전을 기준으로 평론은 ‘사물의 가치, 우열, 선악 따위를 평가하여 논함’이라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리뷰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리뷰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전체를 대강 살펴보거나 중요한 내용이나 줄거리를 대강 추려 냄’이라는 뜻으로 평론보다는 조금 가벼운 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리뷰는 누구나 쓸 수 있고,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평론보다 조금 더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에 따르면, 영화 평론가들은 자신이 평론하게 되는 영화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 평가를 해야 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다른 영화와의 비교가 필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영화 평론가들은 많은 영화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고, 영화에 대한 배경 지식 또한 갖추고 있어야, 평론이라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뷰는 아무나 할 수 있어도 평론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과거 대부분의 영화 후기 및 관람평을 평론에만 의존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리뷰를 쉽게 접할 수 있고, 다양한 사람이 영화 리뷰를 작성하기 때문에 그 선택의 폭이 넓어져, 과거에 비해 영화 평론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서 영화 평론은 과거만큼 활발하게 이뤄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왓챠나 네이버 영화를 통해서 평론가들의 별점과 한줄평을 알 수 있고, 관객 참여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영화에 대한 해설을 진행하는 GV를 통해서 직접적인 소통도 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IPTV 및 케이블 회사가 자체적으로 영화 큐레이션 영상을 제작하면서, 간접적인 평론 활동이 이뤄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별점으로 평가하지 않은 평론가들의 이야기는 쉽게 접할 수 없고, GV에 대한 수요는 일부 대중적으로 유명한 평론가들에게 몰려 있기 때문에 새로운 평론가에 대한 정보도 알기가 어렵습니다.

 

현대의 영화 시장은 하루에도 수십 편의 영화가 쏟아집니다. 관객들은 영화를 관람하면서, 궁금증이나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영화관에 불이 켜지자 마자 핸드폰을 들어 바로 검색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개봉함과 동시에 글이 나와야, 관객들의 소비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평론은 그렇게 빠른 시일에 나오기도 어렵고, 많은 영화의 수를 모두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많은 영화의 평론을 위해서는 영화를 한 번 본 뒤에 그 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인상 평론이 이뤄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평론에 비해 전문성이 조금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관객들도 영화를 한 번 보고 그에 대한 리뷰 및 관람평을 남기기 때문에 비교적 그 차이가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론가로 차별점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일반 평론이지만, 한 평론가가 많은 영화에 평론을 내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기본적으로 평론을 위해서는 한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경우가 많고, 장면을 세세하게 분석하기 위해서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영화 평론은 학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신중한 자세로 접근해야 합니다. 단순히 자신의 감상이 아닌, 작품으로서 영화를 평가해야 하고, 평가에 대한 근거와 논리가 정확하게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고,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분들에게는 이런 글에 대한 이해나 공감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평론가와 일반 관객의 온도차

 

영화에 대한 해석보다는 학문적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영화의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법 및 다른 영화 비교, 장르, 심리학, 작가주의, 사상 중심이 된 이야기이거나, 감독 및 배우에 대한 담론이 주로 담겨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재미 유무를 보기 위한 관객들에게 이런 평론은 자신의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하는 글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평론가 중에서도 대중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평론가도 있지만,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영화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는 일반 관객과의 온도차로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관객들은 관객 평점을 통해서 영화의 재미 유무를 판단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에는 맹점이 존재합니다. 바로 평점을 주는 주체가 불특정 다수라는 것입니다. 장르 영화에 대한 평점을 발 빠르게 메기는 관객들은 장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재미가 있으나, 그렇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재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재미있는 영화로 느껴지는 영화라도, 공포 영화에 관심이 없거나, 크게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에게는 다른 평가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재미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영화마다 그 기준이 달라지고,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평점을 메기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관객들의 평가에 영향을 받거나 자신의 감정이나 취향이 적극 반영되어서 극단적인 별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개봉 초기에 평점의 방향에 따라서 전체 평점 자체가 바뀌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자신은 그저 그렇게 봤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평이 좋았다면 0.5점 정도 높게 줄 때도 있고, 반대의 경우라면 낮게 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평론가는 그렇지 않습니다. 평론가의 이야기는 누가 보아도 그 이야기가 납득이 가야 합니다. 이는 항상 객관적인 태도를 보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주관적인 주장을 펼치더라도 그 주장이 설득력이 있고, 근거가 충분하여서 타인이 인정할 수 있을 만큼의 타당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지인의 반응을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자신이 아는 사람에 대한 신뢰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 사람의 취향이나 성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고려하여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론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평론가들은 대체로 비슷한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석에 대한 부분이나 사회적인 이야기와 결부시킨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 차이가 발생할 수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영화를 보는 눈이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론가 한 두 명의 평점을 꾸준히 보면서 그들의 성향까지 감안하면, 영화에 대해 예측해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평론가와 영화 리뷰어 그리고 프로슈머

 

하지만 앞선 내용에는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자신이 참고하는 사람이 영화에 대한 꾸준한 반응을 올리는 블로그 및 유튜버와 같이 영화 관련 인플루엔서들의 평을 참고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평론가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평론가보다는 일반 관객에 조금 더 가깝고, 해당 인물의 평을 오래 봐왔다면, 그 평가 또한 감안해서 받아 들 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평론가의 평을 볼 이유가 사라집니다.

과거에 비해서 영화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대학에도 영화 관련 학과가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영화 역사에 대한 공부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VOD나 OTT 서비스를 통해서 원하는 영화는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영화에 대한 소비 욕구만 있다면, 많은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일반 관객이지만, 영화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많은 소비자를 경제 용어로 프로슈머라고 합니다.

영화 또한 프로슈머의 활동이 활발한 콘텐츠입니다. 이미 많은 영화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있고, 그곳에서 활동하거나 개인 SNS에 영화 리뷰를 작성하여 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화 분석을 평론가에 의존했던 과거와 달리, 관객이 원한다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화자 또한 SNS 팔로우나 유튜브 구독 및 블로그 이웃을 통해서 많은 리뷰를 접하고 있고, 이는 비교적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과거와 달리 극장의 수가 늘어나서 재관람이 수월해지고, 극장 개봉 후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온라인으로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감상을 다시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영화의 재소비는 비교적 쉬워졌습니다. 굳이 평론이나 리뷰를 통해서 여운을 느끼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환경까지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리뷰 콘텐츠의 소비되는 매체가 글이 아닌 영상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 속도의 상승으로 인해, 동영상 스트리밍이 수월해짐에 따라서 동영상에 대한 소비가 훨씬 늘어났습니다. 과거에는 궁금한 것이 있을 때 네이버 지식IN을 찾던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궁금한 점을 유튜브를 통해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상은 글에 비해 훨씬 직관적이며, 감정 및 의미 전달에 훨씬 수월하다는 장점을 가집니다. 이동진 평론가의 경우도 일찌감치 방송활동을 통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했고, 이를 통해 일반 관객에게 더욱 친숙한 평론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영화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평론가입니다.

 

물론, 영상을 통한 영화 비평이 꼭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글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충분히 있고, 저 또한 글과 영상을 모두 활용하여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전해 받고 있습니다.

 

 

 

평론가는 필요한 것일까?

 

점점 평론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음과 동시에 일반 관객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평론가들. 그렇다면 영화 평론가는 정말 필요한 존재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관객들과 괴리된 반응 때문에 관객들에게 외면받더라도 평론가는 굳건하게 자신의 평론을 이어 가야 합니다. 평론은 관객들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발전시키기 위한 많은 노력에 앞장서는 것도 영화 평론가입니다. 좋은 영화와 영화인을 소개하고, 그들이 많은 대중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게 하는 것도 평론가입니다.

만약 평론가가 영화에 대한 평론을 하지 않는다면, 극장에 개봉하는 영화들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 자극적이거나, 과도한 신파 혹은 스타만을 섭외해서 그들의 팬덤을 이용하려고 하는 저예산 영화들이 속출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은 이미 일본 영화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처음에 가졌던 의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영화 평론가는 재미있는 영화에도 무조건 딴지를 거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보는 것일까요?

앞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도 좋은 평점을 받은 영화들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영화 [다크 나이트]나 [타이타닉]도 블록버스터 영화 중에서 좋은 평점을 받은 사례이며,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는 코미디 영화임에도 높은 평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영화는 재미를 위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 재미는 단순히 웃음이 아니라, 영화를 관람함으로써 생기는 모든 흥미를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평론가마다 그 차이는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반영되는 사항은 영화의 가치일 것입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도 이 영화만의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이 영화를 다른 영화로 대체할 수 있냐고 물었을 때, 그 대답이 어려울수록 그 점수는 높아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영화 [엑시트]는 여름 성수기 보고 즐기기 위한 영화로 제작되었음에도,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메시지나 전개 방식에서 차별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차별점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 차별점이 [엑시트]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 된 것이고, 그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말하는 사회적인 메시지는 이미 다른 영화에서 많이 보여준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봉준호 감독만의 개성으로 보여줬기 때문에 같은 메시지를 다룬 영화라도 [기생충]은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것입니다.

 

 

어디서나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점을 지적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는 영화 평론가가 운동선수의 코치나 감독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선수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코치 및 감독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코치나 감독이 운동선수보다 운동을 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해당 선수에게 조언을 해주며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 또한 선수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이뤄질 수 없을 것입니다.

영화 평론가도 마찬가지로, 한국 영화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발전은 위해서는 평가가 필요한 것이고, 그 평가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 필요함과 동시에 그 분야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영화 평론가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의견이 다르다고 무조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그 다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다름을 인정한다면, 여러분 또한 더 넓은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참고 : [영화 비평 – 이론과 실제] : 강성률 지음, 아모르문디

 

posted by DdaDdaSsij 2019. 8. 18. 14:37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합니다. 눈에 띄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타인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합니다.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없다는 비극적인 현실을 잘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가늘고 길게 혹은 짧고 굵게.

 

특히나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는 크게 눈에 띄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희망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영화 [수상한 교수] 리뷰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큰 성공보다는 크게 망하지 않은 것을 더욱 선호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거스르다

 

 

의문의 사건으로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인 혜정은 유령이 되어서 자신이 살았던 시간을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내일이 없는 유령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길을 반대로 걷는다.’ 이 이야기가 영화의 시간 순서를 거슬러 가는 이유가 됩니다.

 

시간을 거스르는 영화에서 특징적인 것은 결과에 대한 궁금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에 대한 궁금증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시작에 등장한 어떤 남자의 죽음 그리고 혜정의 죽음이 연관이 되어 있는 것처럼 영화는 보여주면서, 그 원인은 무엇이며, 어떤 내막이 있는지를 쫓아가는 영화입니다. 이런 경우 영화는 그 원인이나 내막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주제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일생생활에서는 거스르다는 표현보다는 거슬린다는 표현이 더 많이 쓸 것입니다. 영화 속 혜정 또한 죽음을 맞이하기 이전에 거슬리는 것들이 몇 가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자신에게 고백을 한 민성의 존재일 것입니다. 그전까지 자신의 집 앞까지 함께 해주던 그의 고백은 혜정과 민성의 사이를 서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혜정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어둠은 그전과 다르게 더욱 무섭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도와달라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것이 혜정에게 두 번째로 거슬리는 부분일 것입니다. 어떤 아이의 모습을 본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보이지 않고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작지만 선명하게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혜정은 그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옵니다.

 

방으로 돌아온 혜정은 방의 불을 켜지만, 형광등이 깜빡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로 거슬리는 부분일 것입니다. 혜정은 그런 형광등의 불을 꺼버립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혜정은 방으로 들어갔지만 깜빡거리는 불은 꺼지지 않았고, 그날 혜정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빛과 빚

 

 

또 다른 주인공인 효연은 어린 나이지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어쩔 수 없이 눈에 띄지 않은 삶을 살게 된 효연과는 반대로 혜정은 자신의 선택으로 타인의 눈에 띄지 않은 삶을 살려고 합니다. 이런 형태로 두 인물은 전혀 반대된 성격과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영화 속 효연은 의도적으로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빛이 없는 곳으로 숨는 모습이 몇 번 등장합니다. 지연의 방에 숨어있는 효연은 지연을 찾는 외침에 방구석으로 숨는 장면이 등장하고, 언니와 함께 있던 호텔에서도 암막 커튼 뒤로 숨어버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처음으로 빛이 직접적으로 쐬어지는 장면이 클라이맥스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채 사무실에 있는 그녀는 켜져 있는 불을 끄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은 깜빡이면서 영화가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혜정의 모습을 보면 이런 깜빡임이 영화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이런 빛의 깜빡임이 꽤 자주 등장합니다. 혜정의 방에서도 등장하지만, 가로등의 깜빡임도 잠깐 등장하는 등 영화는 이런 모습들을 의도적으로 등장시킨 이유를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작은 외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은 목소리

 

 

혜정은 영화의 마지막에 민성에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은 돈을 빌리는 것도 싫고, 빌려주는 것도 싫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는 빚을 지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표현되고 있지만, 이는 혜정의 성격을 표현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눈에 띄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 혜정의 태도와 함께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본래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빚을 지면서 유지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타인이 나에게 신세를 지고, 그리고 그것을 핑계로 만나게 되거나 내가 다른 신세를 지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 인간관계도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에 민성은 혜정의 모습을 보며,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 표현으로 그것을 설명하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그런 민성을 보며, 혜정은 평소에 자신이 몰랐던 그의 모습을 알게 되고, 그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혜정은 그제서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혜정은 500만 원 때문에 사채를 쓰기도 하냐는 질문을 하고, 둘은 그럴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전의 혜정은 자신 말고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도와달라는 아이의 목소리에도 그냥 지나치며, 민성의 고백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서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인 수양이 등장합니다.

 

만약, 혜정이 죽음을 맞이한 상태가 아니었어도 이런 부탁을 했을까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줄 수 있을 것이라 보이는 수양에게 끈질긴 부탁을 합니다. 결국 인간관계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 생각됩니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면, 나중에는 그 사람이 나에게 부탁할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것은 한두 사람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닌 사회 전체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유령이 되어서 알게 된 것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깜빡이던 불과 혜정의 모습을 연관 지어서, 영화의 앞 장면으로 가져와서 생각해본다면, 혜정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일들은 혜정이 눈에 띄지 않으려고 남들이 가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을 살았다면 평생 몰랐을 것입니다. 유령이 되어 시간을 거스르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기 때문이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의 뜻에 거스른 적이 없다면 말이죠.

 

 

유령이 사라지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느낌이 들 것이고, 무언가 빠트린 것 같은 느낌일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잊어버렸을 때, 왔던 길을 되돌아가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그 문을 열 수 있던 것이라고 생각 봅니다.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는 비교적 흔한 전개 방식과 코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구석구석 디테일을 살리기 위한 노력의 흔적들은 느껴졌지만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감독의 첫 장편이어서 그랬던 것일까요, 전개가 늘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가 가장 완벽한 상태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영화에서는 편집되었어도 괜찮을 장면들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전개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지고, 이 지루함 때문에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메시지의 내용이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과는 별개로 현대인이 느끼는 감정이나 상태를 영화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속 두 캐릭터는 현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 인물들이 타인을 조금 이해하는 결말은 영화가 말하는 어두운 밤의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봅니다.

 

 

 

 

 

 

 

posted by DdaDdaSsij 2019. 8. 16. 13:21

 사람이 변하게 되는 요인에는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에게 자극을 주어서 인물의 변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통해서 영화의 메시지와 결말에 도달하게 됩니다. 영화 [수상한 교수]에서는 인물이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주치의와의 상담을 통해서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폐암 4기라는 판정을 받지만, 담배도 피우지 않은 그에게 폐암 4기는 말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리차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하여,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는 마인드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살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맞이하게 되는 충격적인 사실들이 존재합니다. 주인공 리차드에게는 폐암 4기 판정이 그 첫 번째 일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폐암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주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것처럼 리차드는 전혀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그 원인이 궁금해집니다. 그가 사는 집안 공기에 폐암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라돈이 함유되어 있던 것일까요?

심지어 리차드는 살기 위한 치료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왜 치료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도 확실한 원인이 없습니다. 심지어 폐암 판정 이후에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비관하며, 학교 호숫가에 뛰어든 것을 생각해보면 그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영화는 그것들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갑자기 찾아오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리차드와 가족들의 저녁시간을 살펴보면리차드의 딸 올리비아와 아내인 베로니카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올리비아가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말을 하자, 베로니카는 어릴 때 한 번쯤 겪는 혼란이라며 올리비아는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와 반대로 리차드는 올리비아의 고백에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녀를 응원해줍니다.

그리고 베로니카에게는 더 큰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리차드의 학교 총장과 바람이 났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리차드는 그녀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왜 하필 총장과 바람이 났냐는 이야기를 합니다. 불륜을 할 거라면잘생기고 젊은 청년이랑 하라는 농담까지 건넵니다.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은 리차드에게 더 큰 충격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올리비아의 비밀을 알게 된 베로니카의 반응 또한 극히 자연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을 때, 사람들은 1차적으로 그 사실에 대해서 부인하려고 합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죠. 베로니카가 그렇습니다. 자신이 봐오던, 올리비아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 것이죠. 적어도 베로니카에게는 그렇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로니카는 올리비아에게 자신이 올리비아보다 올리비아에 대해서 더 잘 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곤 합니다.

그에 비하면리차드의 태도는 상당히 덤덤합니다. 이방원의 하여가처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자신이 죽어가는 마당에 다른 사람의 처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학교수라는 리차드의 직업을 생각해보면리차드는 꽤나 보수적인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인물이 자신의 딸이 동성애자임을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일 것입니다

 

자신의 상황들 받아들이지 못하고 발버둥을 치던 리차드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하며, 마음을 내려놓고 난 뒤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크게 동요하지 않은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리차드는 수업에 들어가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은 학생은 모두 내보내고, 자신이 가르치고 싶은 학생들만 수업을 하려고 합니다. 예고되어 있지 않았던 리차드의 모습에 학생들 또한 당황을 합니다. 머지않아 학생들은 그의 수업에 만족하게 됩니다

 

역시 조니 뎁

이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조니 뎁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나 이 영화는 리차드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영화입니다. 때문에 그의 매력이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한부를 선고받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이 자유롭게 행동하는 모습의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멀쩡한 그의 모습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영화마다 개성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보여줄 모습이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냥 대사를 하는 장면에서 개성이 느껴지면서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무언가가 있는 배우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그런 그의 매력이 더더욱 빛이 나는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영화 속 리차드가 보여주는 모습과 내용 또한 조니 뎁의 실제 인생이 투영되어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나름 사연이 있는 조니 뎁이 연기하는 리차드의 모습이 더더욱 마음에 와 닿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한부에게 남은 인생이란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하나의 아이러니가 남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리차드가 자유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아직 인생의 끝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갑니다. 끝이 정해져 있는 사람은 자유롭게 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인간의 목표는 크게 성공하는 것보다는 크게 망하지 않은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유로운 삶을 살기로 한 리차드는 계획한 일들이 오히려 잘 풀리는 듯합니다. 이성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여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비교적 쉽게 얻어냅니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이 처했는 상황에 따라서 우선되는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리차드의 이야기는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더 가치 있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자 리차드에게 찾아온 변화는 그리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 스스로에게 더 신경 쓰고, 자신의 의사를 더욱 분명하게 하면서 리차드는 꼰대 같은 모습보다는 조금 더 친근한 느낌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모습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강한 인상을 줍니다. 이 마지막 장면이 영화가 말하고 싶어 하는 거의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죽음이 정해지지 않은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길을 따르지만, 죽음이 정해진 자는 자신을 따른다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메시지라고 생각해봅니다.

 

posted by DdaDdaSsij 2019. 8. 15. 16:17

 

송강호, 성동일, 차인표, 줄리아 로버츠, 니콜 키드먼까지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 배우들의 공통점은 67년생으로 제이슨 스타뎀과 동갑인 배우들입니다. 50이 넘었지만, 액션 영화의 주인공인 그는 다이빙 국가대표로 활동한 뒤 스포츠 모델로 활동을 하다가, 30살의 나이에 배우로 데뷔합니다. 그의 파트너인 드웨인 존슨 또한 최근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할 만큼 좋은 힘과 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출연한 [분노의 질주 : 홉스 앤 쇼]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스핀오프로 시리즈의 주인공인 루크 홉스와 2015년 [분노의 질주 : 더 세븐]부터 합류하게 된 데카드 쇼의 버디 형사 액션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 시리즈에서는 카체이싱이 주가 되는 액션이 등장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코믹함과 액션이 주가 되는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시리즈의 기조라고 볼 수 있는 자동차를 이용한 액션 또한 등장하면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홉스 앤 쇼]라는 스핀오프가 만들어진 이유는 시리즈의 확장성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드웨인 존슨은 제작에 직접 참여하면서, 이 스핀오프에 대한 열정을 과시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내년에 개봉하는 [분노의 질주 9]에는 이 두 배우가 참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빈 디젤과 드웨인 존슨의 불화가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죠. 드웨인 존슨이 SNS를 통해서 빈 디젤이 매번 촬영장에 지각을 한다며, 불만을 표시했고 그 뒤로 두 사람의 불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때문에 드웨인 존슨은 [홉스 앤 쇼]에 더더욱 열정을 보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4DX

4DX 효과는 상영관마다 스펙 차이로 인해서 구연의 정도가 다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용산 4DX를 기준으로 말씀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영화의 특별 포맷에 관심을 가지는 편은 아니지만,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항상 4DX로 봐왔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옳았고,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카체이싱이 주요 콘텐츠인 영화인지라, 영화 속 자동차의 움직임을 그대로 재연하는 모션 체어의 움직임과, 많은 제작비로 거대한 스케일과 다양한 효과를 보여주는 영화의 장면 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만듭니다. 이러한 점을 간접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4DX를 관람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오랜만에 4DX에서 영화를 봐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효과가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 단순한 충격이나 방향성을 알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였던 과거와는 달리 충격의 방향 및 4DX가 구연할 수 있는 효과를 상당히 잘 활용한 느낌입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비 오는 장면에서 비를 구연한 4DX효과는 용산 4DX에서만 느낄 수 있는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시리즈가 그랬지만, [분노의 질주]는 특히나 4DX로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4DX의 주요 효과가 체어 모션인데, 이 효과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부분이 자동차 및 탈 것에 의한 충격들에 대한 표현입니다. 발목을 건드리는 파편 효과 및 좌우의 움직임에 대한 효과는 일반적인 액션 영화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영화를 특별 포맷으로 관람할 예정이라면, 4DX를 추천드립니다. 여의도 4DX에서 보면 제대로 앉아있기가 힘들겠네요. 개인적으로 좌석에 벨트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스핀오프 [분노의 질주]

 

시리즈로써 [홉스 앤 쇼]는 그 맥을 유지하는 정도입니다. 카체이싱을 위한 시리즈이지만, 이 영화는 그 맥을 100% 유지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말 그대로 스핀오프라는 점과 제목부터 두 인물을 강조하는 것은 카체이싱이 아닌 두 인물의 케미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시리즈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리즈마다 하나씩 보여주는 자동차로 보여줄 수 있는 묘기가 이 영화에서도 등장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자동차가 헬기와 싸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시리즈의 영화를 볼 때마다, 정말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운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이 영화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볼 때마다 ‘다음 편에서 새로운 것이 등장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지만 영화는 항상 그 의문을 정면으로 맞서면서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카체이싱과 별도로 악당인 브릭스턴이 보여주는 오토바이 액션은 상당히 놀랍습니다. 터미네이터와 같이 기계와 결합된 인간이라는 컨셉에 맞게, 오토바이와 혼연일체가 된 듯한 모습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이것 또한 매 시리즈마다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리즈마다 보여주는 속도감이나 카체이싱을 기대하시는 분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 영화는 카체이싱보다는 버디 형사 액션물이기 때문에 카체이싱보다는 두 사람의 케미와 액션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리즈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카체이싱 장면이 등장하니, 이것을 아쉬움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영화의 메시지도 뚜렷합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매 영화에서 친구 그리고 가족에 대해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의 결말은 가족과 재회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거나, 함께 하는 친구를 가족이라 표현하며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최근 시리즈였던 [더 세븐]에서 폴 워커의 죽음을 추모하며, 브라이언 오코너와의 이별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영원한 가족이라는 것을 강조하였고, [더 익스트림]에서도 도미닉 토레토가 배신을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끝까지 그를 믿으면서 함께 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홉스 앤 쇼]는 기존 시리즈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노선을 보여주고 있지만,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는 자동차 묘기와 카체이싱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이 영화가 [분노의 질주] 시리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는 듯합니다.

 

 

 

버디 액션

이 영화의 가장 큰 틀이라고 볼 수 있는 버디 형사 액션물의 역사는 상당히 깊습니다. 그리고 많은 영화들이 존재합니다. 이 영화 또한 버디물의 공식을 잘 따라갑니다. 앙숙이었던 두 사람이 협업을 하면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어쩌면 뻔하지만, 그 틀로 많은 영화가 만들어진 만큼 재미가 보장되어 있는 스토리 구성입니다.

 

과거에 비해 버디 액션물이 많은 조명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등장한 [홉스 앤 쇼]에게 반가움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액션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쏟아지던 시대를 지나서 뒤늦게 등장한 [존 윅]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액션이 우선시 되는 영화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홉스 앤 쇼]가 그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눈길을 끌었던 것은 액션의 스타일입니다. 액션 장면이 다른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비교적 친숙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에서 브루스 리가 거론되는 것처럼 이 영화는 동양 영화에서 보여주는 액션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동양의 액션은 성룡의 액션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변 상황을 이용한 액션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 서양의 액션은 철저하게 짜인 동선과 완벽한 합을 보여주는 액션을 보여주지만, 동양의 액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집어서 싸움의 도구로 이용하여 싸우는 리얼함이 그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영화 [베를린]을 살펴보면, 조금은 처절하게 싸우는 두 인물이 잡히는 물건을 던지거나, 물건으로 상대를 가격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홉스 앤 쇼]에서도 이런 모습이 보였습니다. 기존 총격전인 주를 이루던 할리우드지만 이 영화에서는 총보다는 맨몸 액션을 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총이 등장하지만, 이를 무력화하여서 오로지 사람의 몸을 이용한 액션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또한 영화 속 해티 쇼가 보여주는 액션은 [캡틴 아메리카]에서 블랙 위도우가 보여주는 액션과 비슷합니다. 이는 [캡틴 아메리카]의 무술감독이었던 데이빗 레이치의 액션 스타 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루크 홉스의 고향으로 설정되어 있는 사모아라는 나라 또한 오세아니아 북쪽에 있는 나라로 동남아시아와 상당히 근접해 있습니다. 이런 설정들에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데이빗 레이치

 

영화를 연출한 데이빗 레이치의 특기가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그의 활약이 가장 돋보였던 점은 라이언 레이놀즈의 카메오 출연일 것입니다. [데드풀 2]를 연출했던 인연으로 라이언 레이놀즈가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여서 영화가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라이언 레이놀즈는 어떤 영화에 나와도 그냥 데드풀 같아서 혹시 멜로 영화에 나온다고 해도 데드풀의 멜로 영화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정말 데드풀 그 자체입니다.

 

데이빗 레이치는 스턴트맨 출신으로 그의 감독 데뷔작인 [존 윅]이 성공을 가두면서 개성 있는 액션을 보여주는 영화감독을 주목을 받은 뒤로 캡틴 아메리카의 솔로 영화인 [윈터 솔저]와 [시빌 워]의 무술 파트를 담당했습니다. 아마, 마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 중에서 이 두 영화의 액션을 좋아하실 분이 많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뒤로 [아토믹 블론드]와 [데드풀 2]를 연출하면서 데이빗 레이치만의 독특한 액션을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그가 기획한 [존 윅 3]에서 등장한 영화 [악녀]의 오마주 장면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동양의 액션, 그리고 한국의 액션 영화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전부터 [데드풀 2]의 원작자가 [러시아워]와 비슷하다는 언급과 함께 이소룡의 [용쟁호투]의 리메이크 감독으로 물망에 오른 것과 같이 동양의 액션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의 액션 스타일이 이 영화에서도 잘 반영되었습니다. 

 

그동안 19금 액션을 보여줬던 그의 모습과 달리 이 영화는 [데드풀 순한 맛]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 영화도 분명 액션과 총질이 등장하지만, 피가 등장하지 않고, 그 표현 또한 직접적이지 않습니다. 기존 시리즈들이 대부분 15세 관람가였고, 전작인 [더 익스트림]에서는 약간의 고어 효과가 들어있던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 [데드풀 순한 맛]을 통해서 모든 연령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던 그의 모습이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데이빗 레이츠는 인터뷰에서 ‘[데드풀 3]가 꼭 청불일 필요는 없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는 그의 생각인지 디즈니의 생각인지 알 수 없으나, 청불 영화를 만들어오던 그가 청불 요소가 아닌 액션을 만든다는 것은 나름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데드풀 3]는 청불로 만들어주세요….

 

 

 

 

영화는 기존 시리즈의 메인 콘텐츠인 자동차를 이용한 액션이라는 주제와는 조금 다른 버디 형사 액션물이지만, 막상 영화를 관람하면서는 누가 봐도 [분노의 질주] 시리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또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보여주는 조금은 빈약한 스토리라는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영화는 스토리를 중점적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리뷰의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이 영화는 오로지 액션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액션 장면을 만들고, 그 사이를 이을 수 있는 이야기는 나중에 만듭니다. 때문에 긴밀한 인과 관계 혹은 반전과 같이 관객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머리를 비우고 영화에 등장하는 액션 장면들을 보는 것이 이 영화가 만들어진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관람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posted by DdaDdaSsij 2019. 8. 10. 15:35

제목만 들어보면 마치 SF 재난 영화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극히 조용한 미스터리 드라마입니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익숙하다고 하실 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영화를 마음에 드는 것만 보려고 했었다면, 이 영화를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름 일주일에 4편 정도의 영화를 보자는 나름의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보게 된 영화입니다. 

 

 

이것이 중국 영화다

 

편견을 가지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지만, 사람은 이전에 보여준 모습을 통해서 지금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 대상은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까지 중국 영화는 자본은 많지만, 영화 제작 기술의 부재로 인상적인 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자본이 투자된 할리우드 영화는 안 본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중국의 영화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개봉한 [유랑지구]가 괜찮은 평가를 받으면서 중국 영화의 가능성을 보인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중국이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술력은 돈과 시간이 있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지구 최후의 밤]은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 영화계에서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상업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재미는 아니지만, 영화적으로 파고들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일까 환영일까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 시작 후 1시간 뒤에 나오는 제목 타이틀입니다. 영화 중간에 타이틀이 나오는 대부분의 경우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영화의 시작이라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에서도 두 주인공이 사랑을 하게 되고, 그 사랑의 절정에서 제목 타이틀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알려줬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한 여자를 찾는 뤼홍우가 극장에서 잠이 들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뉘앙스를 주고 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영화는 이전의 이야기들을 1부, 뒤의 이야기들을 2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부에서 보여준 이야기들은 경계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영화는 마치, 주인공의 머릿속에 어지럽게 펼쳐진 기억들을 하나씩 보여주는 것처럼 혼란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행동에 대한 결과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처럼, 유기적인 연결보다는 어렴풋이 떠오는 기억처럼 순간순간의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인물이 꿈과 현실 속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그 상황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는 인물의 외모입니다. 현실의 뤄홍우는 흰머리와 수업을 길러있고, 꿈속 혹은 과거의 그는 깔끔한 턱과 검은 머리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현실과 과거의 이야기를 잘 조합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1부에 등장하는 내용들이 2부에 반영되어서 등장하기도 합니다. 다른 세계라고 보이지만 모든 것은 한 세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부의 내용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머리를 빨갛게 염색했을 것이라고 예상한 뒤에 2부에 빨간색으로 염색한 여성이 등장하고, 영화의 첫 장면부터 등장한 마이크를 잡은 여성의 손목에는 낡은 시계가 있습니다. 이는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시계와 같은 시계로 이 여성이 뤄홍우가 찾는 완치원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녹색, 사과, 시계, 자몽 등을 통해서 뤄홍우의 과거, 현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방향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현실과 과거 속 기억에 대한 이야기들로 영화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상당히 어렵게 느껴집니다. 감독이 의도와 상관없이 관객의 입장에서 이 영화에 대해서 100%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느린 호흡과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이야기들과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대사들을 보면서 영화에 흥미를 가지고 보기에는 영화가 주는 단서나 실마리가 너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극장을 나서면서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영화입니다. 왜 다시 보고 싶은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어렵고 난해한 영화임에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영화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알게 모르게 단서를 많이 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은 그 단서의 노출이 적기 때문에 단서라고 알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초반, 뤄홍우는 그녀가 나타나면 자신이 꿈 속이라는 것을 인지하며, 자신의 기억력은 돌과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즉, 그는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고, 그 기억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해석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살다 보면, 100%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모든 요소에 정답을 정해두지 않습니다. 관객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관객들과 공유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도 모든 것을 이해하고 보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알듯 말듯한 기억 속에 있는 단서 하나 없는 그녀를 찾으려고 하는 뤄홍우는 처음부터 그녀를 찾기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릴 적 자주 들었던 음악이 이제는 가물가물해서 어떤 노래인지 찾기도 어렵지만, 종종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것처럼 정확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머릿속 어딘 가에서 자리 잡고 있는 기억을 완치원으로 표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든 기억은 선명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에 의존하면서 사는 것을 불행한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오늘은 마지막 순간이지만, 그 순간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posted by DdaDdaSsij 2019. 8. 9. 16:11

제목만 들었을 때는 종교를 완강히 거부하는 인물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목과는 달리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호시노 유라라는 아이가 왜 예수님을 싫어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지는 제목입니다.

 

적은 변화의 결과

일본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상당히 명확한 편입니다.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와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듯한 영화의 톤이 일본 영화의 특징이고, 이를 좋아하는 마니아분들 또한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일본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적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변화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물의 변화 혹은 공간이나 앵글 등이 있겠죠. 한 영화 안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도전적이거나 실험적이거나 과감한 시도를 하는 횟수가 비교적 적습니다. 관객들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통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들게 만듭니다.

 

이렇게 적은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얻는 효과는 변화를 더 돋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앵글과 비슷한 장소들이 쭉 보여주다가, 조금의 변화만 주어도 관객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이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같은 장소를 찍는 카메라 앵글의 변화입니다. 영화에 어떤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유라의 집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면, 기존에 보이던 카메라 앵글과 다른 위치에서 가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후반부에 교실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약간 기울어져 있는 앵글로 촬영한 장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이 화려한 영화에서 나왔다면,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화려하고, 과감한 변화를 보여주는 영화에서는 어떤 변화에서 대해서 강조할 때는 더욱 과감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클로즈업을 주로 보여주던 영화는 더욱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애초에 클로즈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물의 표정 또한 변화가 없습니다. 주인공인 유라의 모습이 담긴 장면들을 생각해보면 인물의 표정 변화가 다이내믹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유라와 마찬가지로 표정 변화가 없는 인물이 또 있습니다. 바로, 카즈마의 엄마입니다. 유라는 카즈마의 엄마를 보면서, 항상 웃는 얼굴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무표정한 모습을 보여주던 유라와는 다른 표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카즈마의 엄마는 영화 후반부에 상당히 다른 표정과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서 그녀의 감정에 대해서 깊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관찰자의 시점 (스포일러 포함)-----

영화는 주인공인 유라를 따라다니고 있지만, 관객들은 유라의 감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표정 변화가 많은 것도 아니고, 감정이나 기분에 대한 표현도 적습니다. 말 그대로 영화는 유라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유라가 소원을 빌 때,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모습들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감독의 이야기는 영화의 내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 창호지로 되어 있는 문에 구멍을 내는 할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이는 유라의 할아버지 생전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 가족들이 혼자 계신 할머니의 집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곳의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 유라는 학교의 일정에 따라 기도를 하는 법에 대해 알게 됩니다.

유라가 기도했던 것들이 몇 가지 이뤄지면서, 유라는 종교에 대한 신뢰를 가집니다. 하지만, 그 신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카즈마의 죽음 이후 유라는 많은 기도를 했지만, 카즈마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카즈마의 장례식에서 자신의 추도사를 읽고 기도 중 나타난 예수를 책으로 눌러버립니다. 이때의 모습이 영화에서 가장 임팩트 있으면서,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창호지에 구멍을 내는 유라가 구멍을 통해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감독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영화의 마지막에 세상을 떠난 자신의 친구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쩌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과거 자신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나름의 추측을 해보자면, 카즈마에 대한 안 좋은 소원을 빌었던 것이라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유라가 빈 소원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고, 그 소원의 내용이 없다면 영화 속 유라가 카즈마에게 미안해할 이유가 없다고 보입니다. 그런 이유로 카즈마에 대해 부러움을 가지고 있던 유라가 안 좋은 소원을 빌었던 것이고, 그것을 예수가 이뤄주었던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카즈마의 사고에 무표정으로 보였던 것도 이런 이야기들이 반영된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물론, 정확한 사실은 감독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모습은 감독 본인이 투영되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봅니다. 유라의 기도 혹은 행동에 의해서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던 예수가 카즈마의 병실로 안내할 때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모습은 과거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남아있던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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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영화라고 생각했던 이 영화는 생각보다 평범하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7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음에도 영화가 보여주는 깊이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추억으로 생각하며 지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posted by DdaDdaSsij 2019. 8. 7. 12:52

[봉오동 전투]의 원신연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저항의 역사이자 승리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신연 감독은 [봉오동 전투]만의 차별점에 대해서,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최태성 강사가 했던 이야기를 인용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최태성 강사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일제의 지배 정책에 대해서는 10페이지가 넘지만, 저항에 대해서는 2페이지밖에 안된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액션 장면일 것입니다. 영화 시작 1시간이 지나고 난 뒤부터는 상당히 많은 전투가 벌어지는 영화입니다. 두 집단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내용보다는 일본군을 유인해야 하는 봉오동 전투의 성격상 도망가고 쫓기는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덕분에 영화 속에서는 달리는 장면이 상당히 많이 등장합니다. 산 꼭대기를 달리고, 비탈진 돌밭을 달리고, 산을 달리면서 올라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담은 카메라의 움직임도 상당히 역동적입니다. 드론을 이용한 촬영과 스테디 그리고 배우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은 장면 또한 등장합니다. 그리고 과감한 줌인을 사용하여서, 기존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촬영이 더욱 빛나게 하는 점이 바로 다양한 풍경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멋있는 장소가 많이 등장합니다. 영화의 스토리 대부분이 산속에서 이뤄지는 만큼 엔딩 크레디트에 등장하는 많은 지자체의 로고들은 이 영화가 얼마나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이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런 자연경관을 찍기 위해 노력을 한 것은 좋지만 영화는 피할 수 없는 논란이 있습니다. 촬영을 하던 장소가 할미꽃의 서식지로 이 곳을 훼손했다는 지적과 함께 이에 대해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제작사의 잘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지적했던 환경단체인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측이 최근 이 논란에 대해서 다시 입장을 내었습니다. 

기사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일부 악의적인 왜곡이 존재하고 있다면서, 동강 할미꽃의 멸종은 사실이 아니며, 해당 촬영 장소는 일반 할미꽃이 있던 장소라고 했습니다. 물론, 일반 할미꽃이라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멸종이 된 것을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사의 원문은 본문에 링크를 남겨 놓도록 하겠습니다. 

http://www.xportsnews.com/?ac=article_view&entry_id=1151118

 

그렇다고 영화의 액션 장면이 완벽하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우선, 인물들이 어느 지점에 있고 두 집단의 간격이 어떤지에 대한 표현이 없습니다. 때문에 두 집단은 서로 허공에 총질을 하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해철의 검 액션도 과도하게 잘랐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다 보니, 액션을 하는 척만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영화 [사자]에서는 롱테이크를 이용해서 인물의 감정을 표현했다면, 이 영화에서는 최대한 많이 잘라서 긴박함을 유발하려고 했습니다만, 이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져서 전투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위치적인 표현이 가시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작전의 진척도를 알 수 없었다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영화의 초반은 봉오동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인물들의 서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해철과 장하, 그리고 춘희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사실, 영화를 다 본 뒤에는 이들의 배경이 영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런 사연들이 모아지는 하나의 지점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 지점이 강조되고 있는 부분은 아니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인물들의 배경 설명이 없어도 이 영화는 충분히 진행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2시간 15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의 반 이상은 전투 장면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때문에 후반부에 갈수록 전투 장면의 지속적인 등장은 관객들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습니다. 영화의 전투들이 이어지면서, 긴장감을 이어가다가 그 흐름이 끊기는 구간은 바로 영화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장하가 혼자 일본군들과 싸움을 하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영화의 흐름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전까지 치밀한 작전으로 이뤄지고 있던 영화가  갑자기 주인공의 무모한 듯한 모습과 갑자기 등장하는 어떤 인물의 모습은 조금 어리 둥절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이 인물이 왜 등장하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겠으나, 이때부터 영화의 집중이 깨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를 2번을 봤는데, 2번 다 이 지점에서 집중이 깨졌습니다. 

 

---- 스포일러 구간

장하의 누이의 등장은 해철의 등장과 맞닿아 있습니다. 장하의 어린 시절, 장하는 누이를 자신의 부모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해철이 등장하여,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라며 그를 보살펴줍니다. 그렇게 해철은 장하에게는 누이와 같은 존재가 된 것이고, 혼자 남겨진 장하가 죽음을 각오한 순간에 등장한 누이의 모습 이후 해철이 등장하면서 장하에게는 해철이 있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영화 초반에 등장한 장면과도 이어집니다. 해철은 일본군에 의해서 자신의 동생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장하가 채워주게 되었고, 영화 속 대사 및 상황을 통해서 둘은 나름의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이 점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분명 설명이 되었다면, 충분히 감동적인 장면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투 장면의 분량을 늘이기 위해서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감정적인 장면을 최대한 자제하려는 모습 또한 이 장면이 생략된 이유일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 스포일러 구간 끝

 

영화의 주요 액션은 총격전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총격전이 영화의 특징이 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현대의 총격전은 비교적 짧은 거리에서 이뤄지는 액션으로 사격 실력보다는 날렵한 움직임과 상대를 속이는 동작들이 더 중요하게 작용됩니다. 하지만, [봉오동 전투]의 총격전은 비교적 먼 거리에서 이뤄지는 총격전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히 매복을 하고 있다가 급습을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급습에서 느껴지는 통쾌함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거리 총격전에서 느낄 수 있는 스릴은 바로 조준에 있을 것입니다. 영화의 중반부에 장하를 노리는 일본군과 그런 일본군을 노리는 병구 사이에서 오는 긴장감이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런 총격전이 흔치 않다는 점 또한 영화의 괜찮은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총격전을 포함한 액션 장면의 모습들이나 의미들도 다 괜찮다고 느껴지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꼭 말하고 싶은 점은 필요 이상으로 영화가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피가 마구 튀거나, 목이 잘리고, 잘린 목이 굴러가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초반에 긴장감 조성 및 일본군의 극악무도한 모습을 보이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중에서도 영화 초반에 호랑이가 나오는 장면들에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장면은 호랑이를 한반도로 비유하여 표현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독의 입장에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철창에 갇혀있는 호랑이와 난도질당하는 호랑이 모두 한반도의 상황을 표현한 요소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원신연 감독의 특기가 스릴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연출은 그의 특기를 살리는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잔인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습니다. 특히나 일본군의 극악무도함이 필요 이상으로 표현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독립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뮤지컬 [영웅]은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표현이 직접적이지 않습니다. [영웅]이 보이는 태도는 비교적 중립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 뮤지컬의 주인공인 안중근의 업적과 고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안중근 의사 그리고 인간 안중근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영웅]이 이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유는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 것보다는 나라를 위해 끝까지 싸웠던 안중근이라는 인물과 독립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저항의 역사를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나쁘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저항하고 승리했던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저급한 행동에 우리까지 저급하게 대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감독이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저항의 역사, 승리의 역사에 대해서 보여주고 싶었다면, 극악무도한 행동을 일삼는 일본군의 모습은 자제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준 뒤에 독립군의 승리를 보여준다면, 그 승리가 더욱 통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많은 독립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 하는 감독의 의도를 반영하기 위한 모습은 보였습니다. 전국에 다양한 사람들이 독립군이 되었다는 점을 각자 다른 사투리를 쓰는 상황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이로도 모자라서 해철이 그들에게 다시 한번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관객들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독립군의 시선에서 영화를 풀어내었다면, 그들의 고민과 사연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유키오의 존재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스스로의 행동을 보면서 반성하고, 부끄러운 줄 알라는 감독의 메시지가 느껴졌습니다. 이를 위해서 만행에 대한 표현과 유키오라는 캐릭터가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하려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메시지에 대한 표현이 조금 부족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호랑이에 대한 모습도 그렇고, 유키오, 춘희와 개똥이 그리고 끝끝내 살아난 일본 장교 등 영화 속에는 여러 장치들을 통해서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모습들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이 모든 요소들을 눈치챌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도 그것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영화는 성수기 개봉한 영화인만큼 독립군과 일본군의 전투라는 확실한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저항, 승리의 역사를 그리는 영화입니다. 감독도 독립신문의 내용을 참고하여서 영화를 제작했다고 했던 것처럼 역사 고증에도 신경을 쓴 듯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반일 감정을 조금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촬영 중 생긴 생태계 파괴 문제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조로운 캐릭터까지 굳이 따져보자면 단점이 더 많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충분히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osted by DdaDdaSsij 2019. 8. 4. 19:52

 

반려 동물의 수가 늘어나면서, 주인이 없을 때 반려 동물은 무엇을 하며 지낼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영화가 [마이펫의 이중생활]입니다. 이는 [토이스토리]의 주요 코드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토이스토리]의 애완동물 판이라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픽사와 일루미네이션은 확실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점은 이 영화에서도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픽사에서는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일루미네이션에서는 캐릭터의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루미네이션의 영화를 보신 분들은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이펫의 이중생활 2]에서도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상당히 유쾌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성격들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캐릭터가 나와도 재미있게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강아지와 고양이가 되기 위해서 교육을 받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고양이가 되기 위한 과정 중에서 노트북 키보드를 밟고 지나다니며, 커피를 노트북에 쏟으라고 가르치는 부분에서는 재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려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경험담에서 자주 들리는 이야기들을 영화에 잘 반영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반려동물과 함께 자라는 아이라는 설정과 맥스가 겪는 심리에 대한 표현은 좋았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등장했을 때, 저는 이 영화가 상당히 재미있으면서도 의미가 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다칠까봐 조마조마한 초보 부모의 모습을 맥스를 통해서 잘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내용이 영화 전체의 스토리가 된다면 괜찮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여행을 떠난 맥스 가족이 만나게 되는 루스터가 맥스에게 주는 가르침 또한 상당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담으로 이 루스터 목소리 연기를 해리슨 포드가 했습니다.) 매사에 걱정을 하고, 그 걱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쌓여서 이상 행동을 보이는 맥스에게 루스터는 도전하면서 겪는 실패를 통한 배움을 알려줍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이들이 아니라 성인이 보기에도 충분히 흥미가 있는 이야기고, 이런 메시지를 주는 방식으로 영화가 진행되었다면 맥스와 루스터의 이야기로만 꾸며졌다고 해도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은 영화의 초반에는 상당히 흥미롭게 영화를 보고 있다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그 흥미가 조금씩 떨어집니다. 어느 지점에서는 이들의 목표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만듭니다. 결국 이 영화는 반려 동물의 모습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느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이펫의 이중생활 1][]이 무난한 평가를 받으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이유는 이 영화에는 하나의 스토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초반부터 하나의 목표가 존재하고 그 목표를 위한 여정이 영화의 주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하나의 큰 목표에 대한 표현이 약합니다. 영화의 초반에는 여러 동물 캐릭터들이 등장하여서, 즐거운 마음으로 보게 됩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반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디테일한 행동까지 제대로 반영한 캐릭터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반려동물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듭니다.

그렇게 반려동물을 보는 것 같은 모습들이 등장하고, 이 동물들은 힘을 합쳐서 같이 사건을 해결했던 전편과 달리 각자 도생을 합니다. 각 캐릭터 별로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맥스와 듀크, 스노우볼과 데이지, 기젯과 클로이 등 한 영화에 3가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3가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도 아닙니다.

 

결국 반려동물이 사람과 함께 하는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에 긴가민가 하고 있을 때, 영화의 엔딩크레디트에 등장하는 실사 장면들을 통해서 이 영화의 목적을 알았습니다. 이 장면들이 오히려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 뒤에 쿠키 영상도 있으니 다 보고 가세요.

 

기분 좋은 출발로 좋은 영화라는 기대가 들게 만들었지만, 영화는 스토리보다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만 신경을 쓴 듯한 모습입니다. 방향성을 알 수 없는 이야기들 속에서 캐릭터 만큼은 확실한 이 영화는 일루미네이션의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개성 강한 캐릭터에 의존하여, 듬성듬성한 스토리를 선보이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스토리에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충분히 괜찮을 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더더욱 아쉬움이 남는 영화입니다.

 

 

 

posted by DdaDdaSsij 2019. 8. 1. 12:36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시사회 직후부터 호평을 받던 영화가 있습니다. 재난 영화이면서 코미디 영화인이 이 영화는 CJ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CJ는 부진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던 CJ가 달라졌습니다. [극한직업]을 시작으로 [사바하], [기생충]까지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나름의 변화를 보여줬고, 그 정점이 될 영화가 [엑시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누가 보아도 이 영화는 재미있게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인 장면도 없고, 한국 영화에서는 흔하다고 볼 수 있는 욕설도 거의 없으며, 과도한 신파 또한 없습니다. 재난 영화에 꼭 등장하는 자신만 살겠다며 인물들을 배신하는 빌런도 없고, 탈출 과정에서 답답한 행동을 일삼는 고구마 캐릭터도 없습니다.

이 영화는 오로지 재난 상황에 대한 탈출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재난 영화에서 등장하는 클리셰 또한 상당히 절제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어떤 식으로 전개할지가 쉽게 예측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물들이 재난을 극복하는 상황 또한 패턴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영화의 러닝타임을 2시간으로 맞추려는 대형 한국영화들과는 달리 103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또한 상당히 큰 장점으로,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재난의 상황이 시작되기 때문에 재난 상황이 꽤 길게 등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20분을 더 본다고 했다면, 피로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경쟁작인 [사자]와 [봉오동 전투] 두 영화에서도 비슷한 단점이 보였습니다. 아무리 새로운 상황과 패턴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어떤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지루함이 아니라 피로감으로 다가옵니다.

 

재난이 발생하게 되는 순간부터 긴장감을 잘 조성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인물들에게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 주어지면서, 재난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장면부터 긴장감이 조성됩니다. 그리고 상황이 파악된 후에 인물이 혼란에 빠지면서도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탈출이 시작됩니다.

 

재난 영화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탈출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위험에서 멀어지기 위한 과정에서 재미가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엑시트]가 다른 재난 영화와 차별점을 가지는 점은 무언가가 떨어지거나, 갑자기 급습하는 등의 놀라게 되는 상황이 안 생깁니다. 유독가스라는 기체의 특성상 영역 및 위치가 보이기 때문에 조금씩 조여 오는 긴장감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이 모두 고지대에서 발생합니다. 차를 타고 도망치거나, 잘 숨는다고 해결되는 상황이 아닙니다. 이미 사방이 가스로 둘러 쌓인 건물의 고층부에 갇혀있던 인물들이 점점 올라오는 가스를 피해서 더 높은 건물로 올라가기 위해 다른 건물로 이동하고, 그 이동하는 과정에서 시간적인 압박과 높이에 대한 압박 그리고 체력에 대한 압박으로 전해지는 아찔함이 이 영화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이 영화의 주인공이 마동석, 드웨인 존슨과 같이 천하무적의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도 영화의 재미 포인트가 됩니다. 만약에 그들이 높은 난간에 매달려 있거나 힘을 쓰는 상황이 생긴다면, 무조건 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러한 점을 이용해서 일반 사람들에게는 다소 무리한 장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인물들이 보여주는 활약에 필요한 최소한의 배경, 평범한 설정인 산악 동아리 출신이라는 인물들의 특징을 잘 이용해서, 클라이밍이나 산행을 통해 배워 온 그들의 노하우들이 영화에서 잘 나타납니다.

 

 

트렌드를 잘 담아낸 영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나름 젊은 청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의 문화가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선에서 말씀드리자면, 요즘에 유행하는 취미생활이나 미디어 트렌드들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현실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재난을 돌파하기 위한 시도에서 비슷한 이유로 번번이 그 시도가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 비슷한 이유라는 것은 우리 생활에서 쉽게 여기는 행동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도 좋았습니다. 당장 제가 있는 곳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상황과 같은 상황입니다.

 

 

두 배우의 케미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영화의 가장 큰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정석 배우의 연기는 이미 많은 작품을 통해서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줬기에 그의 활약은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연기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지 못한 임윤아 배우에게는 이 영화가 좋은 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배우라는 호칭이 어색하게 들리는 그녀의 연기가 영화의 흐름을 깨지는 않았습니다.

의주는 적당한 정의로움과 적당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평범한 캐릭터입니다. 용남이라는 캐릭터 또한 그렇습니다. 뭐하나 특출 난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더욱 공감되는 것입니다. 뛰어난 힘이나 명석한 두뇌가 아닌 산악 동아리를 통해 배웠던, 매듭법과 기술처럼 평소에는 쓰이지 않지만 영화와 같은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일 숨겨진 그들의 기술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 점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누구나 평소에는 별 볼일 없고, 특출 난 능력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 사람이 특출 나고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용남이라는 인물이 영화 속에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임감과 더불어서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산악 동아리 출신이 아니었다면 그는 더 빠른 시일에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방법조차 찾지 못하고, 용남을 무모하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는 자신이 아는 방법들과 생활 속 도구를 통해서 필요한 대체품을 만들고, 자신의 기술을 이용해서 재난에서 탈출하려고 노력합니다. 누군가는 생각도 못하고, 시도조차 못하는 일은 그는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기술이 빛나는 순간이 영화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의주는 그런 용남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그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고, 자신이 알고 있는 요소들을 이용해서 용남을 전폭적으로 지원합니다. 그리고 용남에게 뒤지지 않은 체력과 힘을 보여줍니다. 의주 또한 산악 동아리였던 점을 잘 이용했습니다.

 

 

[엑시트]의 용남과 의주처럼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특별한 기술 및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을 평소에는 쓸모가 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능력이 쓰일 곳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단순히 용남과 의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용남과 의주를 제외한 사람들 역시 물건, 자산 혹은 영향력 등 자신이 가지고 있으며,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하여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그 노력들이 모여서 영화의 결말에 다다랐을 때는 모두가 영웅이라는 영화의 메시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를 자랑이라도 하는 듯한 엔딩 크레디트의 곡 선정은 영화의 끝을 깔끔하게 만들어 줍니다.

 

 

개인적으로는 몇 번을 봐도 재밌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천만을 돌파한 4편의 영화 모두 영화를 본 뒤에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2번 이상 관람을 했습니다. 짧은 러닝타임이라는 점도 이 영화가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름 성수기에 천만 영화가 탄생한다면 이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벼운 분위기와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동안 CJ 영화가 보여준 모습과 다르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