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daDdaSsij 2019. 1. 4. 15:21


예전에 게임북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만화책을 기반으로 하여서 책에 있는 문제를 풀거나, 몇 가지 선택지를 제시하고 사용자가 그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을 하면, ‘00페이지로 가세요’라고 안내를 해줍니다. 해당 페이지를 가면, 선택한 선택지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일종의 알고리즘을 책 속에 게임 형태로 만든 것입니다. 당시에 아주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에는 그런 형태를 인터렉티브라고 하여서 게임에서 많이 이용되곤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영상에 접목하는 것이 꾀 오래전부터 시도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중적인 매체로 인터랙티브 영화가 나온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영화 [블랙 미러 : 밴더스내치]입니다. 



 



이 영화를 말하기에 앞서 전 이 영화가 참 반가웠습니다. 몇 년 전에 저도 인터랙티브 콘텐츠 제작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어떤 식으로 선택지를 주고, 반응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밴더스내치]가 인터랙티브 영화라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원래 예정되어 있던 영화 관람을 포기하고, 바로 이 영화를 봤습니다. 

이전에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한계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영화는 극장 상영을 목표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극장이 아니라면, 영화를 배급하는 플랫폼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죠. 때문에, 홍보영상이나 게임의 일부 요소로만 구현되었습니다. 제가 제작했던 콘텐츠도 홍보 영상 쪽이었습니다. 

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일입니다. 기술적인 것은 기술을 담당하는 업체가 있어서 별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이것을 스토리로 구현하는 것이 꾀나 골치가 아픕니다. 우선, 선택지에 따라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가 고민입니다. 이 선택지들은 잘 줘야 이야기가 무한대로 방대해지지 않고 적당한 영역 안에서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잘 돌아갈 수 있는 것이죠. 때문에 몇몇 인터랙티브 콘텐츠들은 선택의 큰 의미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밴더스내치]로 예를 들면, 아침 식사로 어떤 시리얼을 먹을지 선택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선택은 영화의 전개와는 전혀 무관한 선택들이죠. (물론, 이 영화는 진행될수록 선택지의 선택이 이야기를 아주 많이 바꿔 놓습니다. 뒤에서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엇을 선택해도 같은 이야기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을 ‘받는다’ 그리고 ‘안 받는다’라는 선택지가 있을 때, ‘안 받는다’를 선택해도 주변 캐릭터들이 억지로 주는 형식으로 이야기 방향에 크게 바뀌지 않은 선택지를 부여하곤 합니다. 두 선택지가 다른 방향으로 간다면, 그 뒤에 나오는 선택지도 아예 다르게 해야 합니다. 때문에 경우의 수가 늘어나고, 제작해야 할 양이 점점 방대해집니다. 때문에, 어떤 선택지를 선택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메인의 스토리로 돌아올 수 있게끔 하는 기술들이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그것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하나의 이야기로 돌아온다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선택지를 선택하는 의미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그렇다면, 선택지를 선택하는 재미가 없어지는 것이죠. 이런 문제들을 [밴더스내치]는 현명하게 이겨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인터랙티브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밴더스내치]는 상당히 영리한 영화라고 하고 싶습니다. 영화의 메인 줄거리를 잘 살리면서도, 선택지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이런 선택지가 있는 콘텐츠를 만들 때는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합니다. 선택지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선택을 안 했을 때의 선택지도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선택지를 고민하는 시간 동안에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도 관건입니다. 이 영화는 인물이 선택지에서 고민하는 장면이 나오는 동안 사용자가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런 선택을 안 했을 때는 이 영화가 생각하는 가장 평범한 선택을 보여줍니다. 

여러 가지 선택이 있지만, 어떤 선택은 그 선택이 영화의 마지막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즉, 이 영화는 인터랙티브적 요소를 영화 속에 아주 잘 녹여내었습니다. 마블 유니버스에서 말하는 멀티버스의 개념을 이 영화에서도 보여줍니다. 다른 세계에서 우리가 그들을 조정하는 느낌을 줍니다. 관객이 영화 속에 한 역할로 나오게 되는 것이죠. 영화 속 주인공은 다양한 시간대의 여러 세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선택하고 있는 이 행위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영화 속에서 선택들로 보여주는 공식 엔딩은 5가지입니다. 중간중간 여러 엔딩들까지 하면 거의 10가지가 넘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독립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크게 보면 다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영화를 다 봐야 드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의 어떤 선택지는 바로 영화가 끝나게 되는 선택지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새로운 선택들을 보여줍니다. 그 선택지를 통해 영화가 다시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모든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부 장면들을 빠르게 지나가면서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장면들 중에서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장면들도 일부 존재합니다. 즉, 우리들에게도 이 이야기가 처음이 아니지만,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처음이 아니라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런 미스터리한 점이 이 영화의 모든 엔딩을 보고 싶게 만드는 점이죠. 

그렇다고, 선택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마음 가는 대로 선택을 해도 무방합니다. 혹은 선택을 안 하면서 봐도 무방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던,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대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대부분 인터랙티브 콘텐츠에서는 다른 결말을 보기 위해서 그 부분으로 다시 돌아가서 또 시작을 해야만 볼 수 있는 엔딩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안내합니다. 영화가 끝나면, 사용자의 선택으로 다른 엔딩을 볼 수 있던 장면을 다시 선택지로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영화의 특성상 타임라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지금 보고 있는 곳이 영화의 어느 정도 되는 부분인지도 알 수 없고 건너뛰기 또한 할 수 없습니다. 10초씩 넘기기만 가능합니다. 이는 선택을 하면,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꼭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받아들여야 하죠. 즉, 선택하면 취소 안 됩니다. 



이 영화는 영화에 인터랙티브적 요소를 넣은 것이 아니라, 인터랙티브가 영화의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합니다. 여태까지 제가 봤던 인터랙티브 콘텐츠들은 스토리와 상관없는 곳에서 선택지를 주거나, 이야기와 관련된 선택지여도 같은 결말이 나오거나, 다른 결말이 나와도 그 선택지가 비교적 단순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란 점 중에 하나는 앞의 이야기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따라서 선택지 문항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영화를 한 번 보고 다른 선택지들을 둘러보면서 꾀나 놀라운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그 달라진 선택지들을 보고 놀라고, 그 선택지를 통해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사용자가 어떤 선택을 하던지, 영화는 그 선택을 존중해줍니다. 영화 속에서도 콜린이라는 인물이 스테판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처럼 말이죠. 온전히 관객의 의지로 이 영화는 진행됩니다. 하나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에서 스테판이 누군가 자신을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여태까지 우리가 선택해왔던 모든 것이 스테판의 의지가 아니라 누군가 조종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죠. 영화 속 인물이 관객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화는 그대로 진행되고, 영화가 끝난 후 사용자의 선택에 의해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보여줍니다. 여러 엔딩들을 모두 볼 수 있게 안내되어 있고, 그 엔딩들이 서로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더 놀라게 됩니다. 일반적인 영화로 구성되었다면 상당히 복잡한 영화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관객이 직접 선택함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구성되기 때문에 오히려 이해가 조금 더 쉬워지는 것 같습니다. 선택은 관객이 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다시 영화를 보게 된다고 하면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르게 생략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아예 다른 장면이 나오는 경우도 꾀 됩니다. 때문에 다시 보게 되어도 지루하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마치, 게임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죠. 



영화의 러닝타임은 1시간 30분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메인 엔딩 하나를 보는데 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정도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의 안내에 따라 여러 엔딩을 보고 나니, 명시되어 있던 1시간 30분 정도가 되었습니다. 물론, 작은 엔딩들까지 하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이 영화를 한 번 보고, 끝낼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게임을 할 때도 한 번 엔딩을 보면 2번은 잘 안 하는 편임에도 저도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선택하면서 봤습니다. 영화 자체가 자연스럽게 안내해주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 다시 선택해야지?’ 하는 고민은 안 해도 됩니다. 



여태까지 봤던 인터랙티브 콘텐츠 중에 이렇게 자연스러운 콘텐츠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비디오 게임이나 PC게임에서도 인터랙티브적 요소가 강조되어서 나오는 콘텐츠는 보기 드뭅니다. 게임에서는 이런 선택지에 대한 것보다는 자유도가 높은 것이 조금 더 높게 평가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자유도가 존재할 수 없는 콘텐츠입니다. 때문에 이런 인터랙티브적 요소는 자유도가 없는 영화에서 자유도를 부여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랙티브 요소에 집중하느라 스토리가 허술하지도 않고, 표현적인 부분에서도 허술하지 않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상당히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서치]처럼 새로운 시도가 새로운 시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평가도 같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과 함께]가 새로운 시도로만 평가받는 것과는 다른 작품이죠. 분명한 것은 이 영화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가능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말은 분명히 맞습니다. 지금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가능한 영화입니다. 이 점은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가능한 새로운 형식입니다. 애초에 영화라는 콘텐츠 자체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만들어진 콘텐츠입니다. 카메라가 발달하고, 필름이 발달하고, 저장매체가 발달되면서 디지털과 CG의 발전으로 만들어진 콘텐츠입니다. 때문에 기술의 발달은 영화의 발달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 [밴더스 내치]가 그 발전 있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작품이 되었죠. 점점 넷플릭스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있는데, 국내 관련 회사들이 그들을 욕만 할 것이 아니라 배울 수 있는 점은 좀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넷플릭스가 처음부터 돈이 많은 것은 아니었는데, 돈 없다고 투정만 부리지 말고요. 



4.5 / 5  기술의 발전이 가져오는 전혀 새로운 영화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