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한국 영화들이 밀린 숙제를 하듯이 2019년이 시작되자마자 줄줄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마케팅을 하며, 기대작으로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일제시대 조선말을 지키기 위해 모인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극본을 쓴 엄유나 감독이 직접 연출을 맡은 작품입니다. 영화 [말모이]입니다.
영화 [말모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근래 역사를 다른 영화들이 왜곡 논란 자주 있자 영화 자체가 실제와 다르다고 명시를 하는 장면이 많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창작되었다고 하지만, 큰 가지들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을 것입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각인이 되기 때문에 이런 영화는 조금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 역사를 다루는 영화들이 너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말모이] 역시 조금은 거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멀리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보는 입장에서도 그들을 관찰하게 됩니다. 어느 한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것이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단순히 진지한 역사만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분명히 그들의 개인적인 사정과 어떤 고난을 겪으면서 이들이 말모이 사전을 이루려고 했는지에 대한 표현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재밌게 풀어내기 위한 노력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가 가지는 무게감과 가볍게 풀어내는 재미, 둘 사이에 애매하게 위치한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영화라면 조금은 무게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이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무게감입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이뤄야 하는 과제를 성공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재미는 있으니, 무게감에 있어서는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조금 덜 드는 것이 이 영화의 한계입니다.
영하 [해적]을 보면 분명 재미가 있는 영화지만 인물들의 역할은 확실합니다. 손예진 배우는 중심 이야기와 이야기의 무게감을 다루고 있습니다. 분명, 해적이라는 영화가 보여주는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남진 배우와 같이 나오는 인물들이 코믹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둘이 만났을 때도 둘의 역할은 확실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극 중 손예진 배우는 절대 가볍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녀에 의해 진행되는 이야기는 나름 무게감 있게 진행되곤 합니다. 영화 [말모이]는 그런 측면에서 전체적으로 가볍게 느껴집니다.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어도 무게 배분에 따라 체감 무게가 달라지는 것처럼 이 영화의 무게 배분은 조금 실패했다고 생각됩니다.
엄유나 감독은 영화 [택시운전사]의 각본을 참여해서 각종 영화제에 각본상 후보에 오를 만큼 좋은 각본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보인 극본은 상당히 정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정직함이 장점이 되려면,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꾸준히 밀고 나가면서 무게감을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쓰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스노볼을 굴린다는 표현처럼 그 감정들이 영화 마지막에 터져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게 하는 영화들은 좋은 영화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말모이]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에 관객들을 속이기 위한 트릭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진행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영화의 진심을 전하는 측면에서는 아주 좋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 재미만 전달하는 영화는 아니라는 점을 어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것 처럼 영화의 무게가 이미 가볍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이런 부분은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택을 했어야 합니다. 앞 부분에서는 재미를 주지만, 후반에는 그들의 진심이 느껴지고 그 진심이 묵직하게 느껴졌어야 한다는 겁니다.
단순 각본의 문제만이 아니라 연출적으로도 그 부분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영화의 음악이 지나치게 많이 쓰였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는데 음악이 거슬린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음악들이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가 점점 감정에 호소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음악들이 관악기를 이용한 음악들이 많아서 다소 가볍게 느껴집니다. 긴박함이 느껴지는 음악이거나 혹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음악이 부분적으로 쓰였다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음악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쓰여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 영화 속에서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장점은 분명합니다. 바로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유해진 배우나 윤계상 배우뿐만 아니라 조선어학회 동지들로 나오는 배우들이 연기 열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배우들의 연기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캐릭터들도 큰 장점입니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넘어서 그들에게 집중하게 되는 흡입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김선영, 김홍파, 우현, 김태훈, 민진웅 배우들이 보여주는 케미는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특히, 그동안 악한 역할을 많이 보여준 김홍파 배우님의 선한 연기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마치, 영화 속에서 김구 선생이 나왔다면 그가 아주 적합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조연으로 나온 조현철 배우와 짧게 나왔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최귀화 배우까지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도 영화의 재미 요소가 될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힘이 있는 영화입니다. 그 힘을 제대로 살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것이 저의 총평입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충분히 있는 영화입니다. 저도 윤계상 배우와 유해진 배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재밌게 봤습니다. 그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전 좋았습니다. 하지만, 영화적으로 아쉬운 점은 어쩔 수 없네요.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셨던 분들의 감춰진 이야기는 더욱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비교적 좋은 태도를 가진 영화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3.5 / 5 좋은 배우들의 연기를 믿고 함께 걸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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