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던 ‘아사코’는 눈이 맞은 어떤 남자와 키스를 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자유로운 영혼은 가진 ‘바쿠’입니다. 어느 날, 그는 말없이 떠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후, ‘아사코’는 ‘바쿠’와 똑같이 생긴 ‘료헤이’를 만납니다. 말도 안 되는 인생의 순간들을 그린 영화 [아사코]입니다.
이 글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스포일러가 들어가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이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공감하실 이야기 하나만 하겠습니다. 네이버 영화를 보면, 평론가 평점란이 있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이 영화에 저런 코멘트를 달았는지 정말 이해가 할 수 없습니다. 같은 영화를 본 것이 맞나요? 여성관에 대한 이야기, 사랑, 상실감? 이 영화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사코]가 영화를 공부하는 모든 분들이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스포일러를 안 하고 영화 리뷰를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보통은 리뷰를 다 쓰고, 스포일러가 되는 부분이 있을 때만 스포일러 주의를 앞에 넣습니다. 그런데, [아사코]는 처음부터 이야기하지 않으면 리뷰가 안 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여러 의미로 모순 덩어리 영화입니다.
정말 이상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영화이자, 신선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와 가장 안 어울리는 말은 ‘뻔하다’입니다. 저는 일본 영화에 대해서는 크게 해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의미를 중요시하는 한국 영화와 달리 일본은 보이는 것에 대해 집중하는 경향이 큽니다. 때문에 다소 의미가 없는 자연의 풍경이 영화의 빈 곳을 채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촘촘한 구성보다는 이미지적인 요소나 영화의 전제적인 분위기에 신경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우선, [아사코]는 시간이 지나면 더더욱 생각나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면서는 알 수 없는 선택들과 예상할 수 없는 결과들로 인해 머리가 복잡해지거나,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것입니다. 저는 후자의 경우였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 영화를 따라갔습니다. 이 영화는 알 수 없는 결정들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저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영화 자체에 설득력이 있다고 하기에는 설명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 내내 불안이라는 감정을 이어갑니다. 이 불안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 같은 불안입니다.
영화 속에서 ‘아사코’와 ‘료헤이’가 그렇습니다. 결혼하자는 그의 말에 ‘아사코’가 ‘바쿠’의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료헤이’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서 ‘바쿠’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료헤이’는 그 말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쿠’는 못 생겼으니까요. 진짜로 ‘바쿠’는 못 생겼습니다. ‘바쿠’는 일본에 존재하는 상상 속 동물입니다. 특징 중 하나로 사람들의 악몽을 먹기 때문에 사람들이 푹 잘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고 합니다. ‘아사코’가 꿈같은 현실을 보냈다고 말을 한 이유도 아마 이 ‘바쿠’와 연관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사코’를 일본이라는 나라로 비유를 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영화에서 한 인물이 어떤 나라 혹은 대중을 상징할 때는 주인공 이름을 흔한 이름으로 사용하곤 합니다. ‘아사코’ 역시 일본에서는 상당히 흔한 이름입니다. 때문에 ‘아사코’를 일본에 비유하는 분들의 해석도 일리가 있는 해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 영화가 어떤 것을 상징하고, 의미를 품고 있기보다는 그냥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영화의 숨어있는 의미를 찾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이 처한 상황 속 인물의 행동입니다. 영화를 볼 때, 인물에 저를 대입해서 보는 편이기 때문에 그 인물의 행동이 이유가 있고, 납득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상당히 이상합니다.
화약 소리에 고개를 돌리다가 눈이 마주치자, 입술을 맞추고, 연인으로 발전합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지만, 둘은 털끝 하나 안 다칩니다. 그 계기로 둘의 사랑은 더 깊어집니다. 빵을 사러나간 ‘바쿠’는 이상한 아저씨랑 친해져서 산 빵을 주고 왔다고 합니다. ‘바쿠’랑 똑같이 생긴 ‘료헤이’를 만납니다. 전시장 앞에서 만나서 이상한 핑계를 대며, 전시장에 들어가고 친구인 ‘마야’의 초대로 4명이 식사를 하게 됩니다. 식사 자리에서 ‘마야’의 연기가 이상하다며 갑자기 시비를 걸더니, 싸운 뒤에 나가려면 ‘쿠시하시’를 붙잡고 사과를 하라고 합니다. ‘쿠시하시’는 아무도 몰랐던 영어 실력을 뽐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과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심이라면 그런 사람도 필요하다며 그 사과를 받아들입니다. 나중에 그 둘은 결혼합니다. ‘료헤이’에게 연락해서 만나지 말자고 말한 ‘아사코’ 그리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반차까지 쓰고, 그녀가 보려고 했던 공연 시간에 맞춰서 갑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공연시간을 바꿨습니다. 온 김에 보고, 가려고 했던 공연장에서 갑자기 지진이 납니다. 지하철을 타려고 했지만, 지하철은 운행중단. 걸어서 돌아가는데, ‘아사코’가 그를 보더니 갑자기 달려와 안 깁니다. 둘은 연인이 되었습니다. ‘료헤이’가 카레가 맛있다며 칭찬하는데 ‘카레가 아니라 라따뚜이’라고 합니다. ‘료헤이’는 놀라지도 않습니다. ‘아사코’는 우연히 ‘하루요’를 만납니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과 식사를 하게 되고, ‘아사코’는 ‘마야’에게 ‘바쿠’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료헤이’는 결혼하자고 하고, ‘아사코’는 ‘바쿠’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료헤이’는 ‘바쿠’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료헤이’가 오사카로 전근을 가게 되어서 집을 봅니다. 집이 홍수가 나면 피해를 보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에도 좋다고 합니다. 이사 준비를 하던 ‘아사코’에게 ‘바쿠’가 찾아옵니다. 놀란 ‘아사코’는 문을 닫고 피합니다.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오는데, ‘료헤이’입니다. 이사를 가기전에 마지막으로 모여서, 식사를 하는데 ‘바쿠’가 찾아옵니다. ‘아사코’에게 데리러 왔다고, 떠나자고 합니다. 망설임 없이 ‘바쿠’의 손을 잡습니다. 그러다가, ‘료헤이’에게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바쿠’는 쿨하게 보내줍니다. ‘아사코’는 돈을 빌려, ‘료헤이’에게 돌아갑니다. 안 받아 줄 것 같던 ‘료헤이’는 그녀를 받아줍니다.
이렇게 내용들을 나열한 이유는 이 이야기 하나하나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전조증상 따 따위 없고,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합니다. 이런 점이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시종일관 지속되면 이것은 의도가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 어떤 인물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전혀 없습니다. 해결했다고 생각했던 문제는 다시 돌아오고, 큰 사건은 별일 없이 해결됩니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마야’의 연극을 보기 위해서 들어간 공연장에서 지진이 난 것은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전개였습니다. 뻔한 영화가 싫다면, 이 영화를 보시면 좋을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순간의 선택들이 뜻한대로 흘러가지 않은 인생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내 맘대로 안 되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영화는 딱 그런 영화입니다. 인물의 마음대로, 관객들의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자기 멋대로 흘러가는 영화입니다.
타인보다는 자신을 우선시 하는 ‘아사코’와 타인을 배려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료헤이’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인물입니다. ‘아사코’가 자신의 짐을 버려달라고 했음에도 ‘료헤이’가 그 짐을 버리지 못한 것은 그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떠나간 그녀가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버리지 못하고 있던 것일까요? 그녀의 고양이인 ‘진탄’도 버렸다고 말했지만 버리지 못했습니다.
‘아사코’가 ‘바쿠’를 기다렸던 것 처럼, ‘료헤이’ 역시 ‘아사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둘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쿠’가 돌아올 수 있다는 불안과 ‘아사코’가 떠날 수도 있다는 불안이었죠. 생각해보면, 둘은 서로를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가 서로를 불안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의 강을 보고도 한 사람은 더럽다 말하고, 한 사람은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둘은 함께해야 합니다. 한 면만 보고 살 수는 없는 세상이니까요.
언제나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인생입니다. 순간순간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듭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되돌릴 수 있는 시간도 충분합니다. 항상 충동적인 삶을 사는 ‘아사코’는 충동적으로 사랑에 빠졌고, 충동적으로 도피도 했습니다. 자신이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꿈에서 깨어보니 자신은 그대로라는 이야기가 상당히 공감이 되었습니다. 나름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신을 바라볼 때의 기분은 느껴보신 분만이 아실 겁니다. 물론, 성장했다고 모든 순간에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뿐입니다. 세상은 어떻게 전개될 지 아무도 모릅니다. 교통사고를 당해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수도 있고,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않습니다. 해결책이 존재할 수가 없는 일이죠. 하지만, 그런 일들이 둘이 함께 한다면 조금은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인 ‘히가시데 마사히로’와 ‘카라타 에리카’를 이야기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카라타 에리카’는 이 영화가 영화 첫 주연작품 입니다. 한국에서는 LG V30 광고와 나얼의 ‘기억의 빈자리’ M/V와 NELL의 ‘헤어지기로 해’ M/V 에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이제 97년생인 그녀가 세월의 굴곡을 담은 인물의 모습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보여줄 수 있는 지 놀랍습니다.
그리고 ‘히가시네 마사히로’는 충분히 익숙한 배우입니다. 이미 많은 작품을 보여준 배우입니다. 한국에서는 [리갈하이 2 – 스페셜]과 [기생수],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를 통해 어느 정도 알려진 배우입니다. 저는 이 배우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 줄 몰랐습니다.
두 배우 모두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며, 사연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의 얼굴을 잘 표현합니다. 작품 자체가 상당한 연기력을 요구하는 영화임에도 두 배우는 손쉽게 연기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조금이라고 관심 있는 분들에게 정말 권장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새로운 영화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5 / 5 말도 안 되는 이 영화의 선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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